15일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제46기 제주특별자치도 왕위전은 단순히 실력을 겨루는 대회에 그치지 않았다. 매 경기 ‘반상’마다 승리를 향한 열기를 가득 피워냈다가도 마지막 수 이후에는 환한 미소로 서로를 격려했다. 또 이제 막 바둑에 눈 뜬 어린 소녀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마주 앉아 진지하게 바둑돌을 놓으며 각자의 ‘바둑 철학’을 소리 없이 주고받았다. 이처럼 제주도 왕위전은 남녀노소 누구나 바둑을 통해 하나 되고 교류하는 화합의 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 ‘반상의 손오공’ 서능욱 9단 왕위전 출격
○…신출귀몰한 수와 엄청난 속기로 ‘반상의 손오공’으로 불리는 서능욱 9단이 제46기 왕위전을 찾아 제주 바둑 열기를 실감했다.
이날 심판위원장이자 결승전 해설자로 나선 서 9단은 왕위전이 진행되는 내내 ‘제주 고수’들의 도전장에 응수해 특유의 속기와 전투적인 수 싸움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특히 서 9단은 왕위전에 참가한 선수 6명과 ‘1대 6 다면기’(고수가 여러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는 바둑)를 벌이면서 참가자들로부터 놀라움을 자아냈다.
서 9단은 “제주도 왕위전의 분위기는 정말 좋다. 특히 근래에 보기 어려웠던 국내 고수 몇 명을 여기서 다시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며 “제주가 갖고 있는 천혜의 자연 환경과 고즈넉한 분위기는 바둑 두기에 최고다. 많은 고수들이 제주를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 왕위전에 불러줘서 정말 고맙다”라며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제주에 내려와 바둑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 마음으로 전하는 학부모 응원전 눈길
○…초등부 대국 내내 학부모들의 시선은 바둑판에 집중됐다.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바둑알을 놓을 때마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힘을 실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치열한 수 싸움을 펼쳤다. 대국이 끝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부모의 품에 안겨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학부모 강영선씨(40)는 “아이를 응원하기 위해 왔다. 승패를 떠나 바둑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고 뿌듯하다”며 “아이가 바둑을 하면서 집중력이 향상됐고 인성교육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고 싶어 할 때까지 계속해서 바둑을 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 올해도 내가 막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대회에서도 최연소 참가자로 기록된 고서호군(백록초 2·사진)은 “작년과 달리 올해는 긴장이 되지 않아 바둑을 더 잘 둘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초등 저학년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고군은 “1등을 해서 정말 기분이 좋다. 하루 평균 2시간씩 많을 때는 5시간까지 바둑을 두며 실력을 키웠다”며 “계속해서 대회에 참가해 초등 최강부에서도 우승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왕위전 반세기 산증인 “명맥 이어나갈 것”
○…제주도 왕위전과 반세기를 함께 해 온 산증인 박영수 제주특별자치도바둑협회 상임고문은 “전국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회인 만큼 제주도민과 함께 ‘제주 대표 바둑 대회’의 명성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상임고문은 제1기 왕위전부터 대회 운영에 참여하는 등 제주 바둑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박 상임고문은 “왕위전 규모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며 “내 인생의 전부를 함께 한 왕위전인 만큼 앞으로도 제주일보와 함께 지속적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겠다”고 얘기했다.
# 인원도 늘고 실력도 늘고…초등부 열기 '후끈’
○…올해 왕위전에 참가한 초등부 참가자들의 실력과 열기가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초등 저학년부(1~3학년, 유치원생 포함), 초등 고학년부(4~6학년)의 참여 인원이 부쩍 늘었으며 실력 또한 한 층 높아지면서 미래 왕위전의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
대회 관계자는 “작년에 예선전에서 탈락한 친구들이 올해 실력을 키워 왕위전에 참가하면서 눈길을 끌었다”며 “참여 인원 또한 지난해 보다 20% 증가하는 등 뜨거워진 관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제주 바둑의 미래가 정말 밝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임창덕·고경호·김지우·장정은 기자 kkh@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