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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도 못보던 시절…가족·마을 모두 잃어"큰넓궤에서 40여 일 숨어지낸 11살 소녀 홍춘호씨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4.16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어두컴컴한 굴 속에서 40여 일을 살았어요. 어두운 밤하늘이라도 좋으니 제발 밖에 나가서 찬 공기도 마시고 하늘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큰넓궤 입구에서 만난 홍춘호씨(81·여)는 4·3 당시 11살의 나이로 마을주민들과 큰넓궤에서 40여 일간을 숨어 살았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에 살던 11살 소녀는 4·3 당시 마을 주민들이 경찰에 잡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부모의 손을 잡고 큰넓궤로 피신했다. 3명의 남동생도 함께 피신했다.

홍씨는 “좁은 궤 안에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살았어요. 토벌대에 들킬까봐 불을 피우지도 못하고 곡식을 맷돌에 갈아 먹으면서 겨우 주린 배를 채웠다”며 “물도 억새를 빨대처럼 이용해 동굴 바위에 낀 이끼나 바닥에 깐 억새에 고인 물을 마시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홍씨는 “언제 죽을지 몰라 배가 고픈지도 몰랐고, 짐승보다 못하게 살았다”며 “아버지에게 밤하늘이라도 좋으니 밖에 나가서 하늘 한 번 보고 싶다고 그렇게 애원했는데 아버지는 나가면 모두 죽는다면서 절대 못 나가게 했지”라고 말했다.

좁은 굴 속에서 40여 일을 버티던 홍씨 등 마을 주민들은 토벌대에 궤의 위치가 발각되자 더 깊은 산 속으로 피신했다가 일부는 잡혀 정방폭포에서 학살됐다.

홍씨는 “피난 생활 때문인지 남동생들은 차례차례로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며 “사는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이었다”고 회상했다.

4·3 직후 부모와 남동생이 숨지고, 식구들과 살던 무등이왓도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잃어버린 마을’이 돼 홍씨는 힘들고도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살아왔다.

지금은 4·3을 기억하고 제주4·3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제주4·3길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며 동광마을과 큰넓궤의 비극을 소개하고 있다. 

70년의 세월을,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홍씨는 “사는게 사는 거라? 살암시난 살았주(살다 보니까 살았지).”라며 굵은 눈물만 흘렸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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