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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어둠 속, 그날의 공포와 아픔을 되새기다끝나지 않은 세월 '지슬'…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4.16
제주4·3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를 찾은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있다.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선생님도 잡아가부난 학굔 댕겨짐이랑 말앙. 집도 문짝 케와부난. 경해도 살아보잰 허난 불치 베르싼 감저 두개 봉가 먹언 굴 소곱에 간 곱안 이서났주게(선생님도 잡혀가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집도 모두 불타버리고, 그래도 살아보려고 하니 불 켜놓고 감자 두 개 먹고 굴 속에 숨어 있었죠)

-강덕환의 시 ‘나의 살던 고향은’ 中

제주4·3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지슬’. 영화 속의 장면은 상상 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70년 전 동광리 마을주민들이 겪었던 사실이다.

영화 지슬의 촬영지로 알려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와 도엣궤에는 제주4·3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큰넓궤와 도엣궤는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로 1948년 11월 중순 이후 동광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동광리 주민들은 1948년 11월 15일 중산간마을에 대한 초토화작전이 시행된 이후 토벌대가 무등이왓 주민 10여 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우자 마을을 떠나 인근에 숨어 살았다.

큰넓궤는 들어가는 입구가 험하지만 안은 넓어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 좋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과 노인을 포함해 주민 120여 명이 굴속에서 40~60일을 살았다. 큰넓궤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를 지나면 5m 정도의 절벽이 나오고, 이곳을 내려서면 이 굴에서 가장 넓은 장소가 나온다. 

청년들은 주변 야산이나 근처 작은 굴에 숨어 토벌대의 갑작스런 습격에 대비해 망을 보거나식량과 물 등을 날랐다. 

마을 주민들은 굴속에서 밥을 하면 연기가 새어나가 혹여나 들킬까 근처 작은 굴에서 밥을 지어다 날랐고, 밖으로 다닐 때는 발자국이 남지 않게 돌을 딛고 다니거나 마른 고사리를 꺾어 밟고 다녔다.

그러나 토벌대는 큰넑궤의 존재를 알고 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굴 안으로 대피시킨 후 이불 등을 고춧가루와 함께 쌓아 불을 붙여 매운 연기를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결국 토벌대는 매운 연기 때문에 굴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총만 난사하다가 밤이 되자 굴 입구에 돌을 쌓아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한 뒤 철수했다.

토벌대 철수 이후 근처에 숨어 있던 청년들이 굴 입구에 쌓인 돌을 치우자 굴 밖으로 나온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토벌대를 피해 무작정 더 깊은 산으로 향했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주민들은 한라산에서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생활하다가 결국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붙잡혀 정방폭포 등에서 학살됐다. 유족들은 시신을 제대로 찾을 수 없어서 헛묘를 만들어 혼백만 모셔 원혼을 위로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제주 안덕동광마을 4·3길에서 만날 수 있는 임문숙 일가 헛묘이다. 

4·3 당시 동광리는 무등이왓(130가구), 조수궤(10가구), 사장박(3가구), 간장리(10가구), 삼밧구석(마전동 45가구) 등 2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4·3으로 인한 희생자는 160여 명에 이른다.

큰넓궤와 더불어 4·3 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집단으로 피난생활을 했던 도엣궤는 굴 내부가 30여 m로 원래 큰넓궤와 이어져 있었다.

큰넓궤와 도엣궤에는 주민들이 가지고 갔던 생활용구 파편들이 널려있어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동광마을 4·3길은 ‘큰넓궤 가는 길’과 ‘무등이왓 가는 길’ 등 2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길을 걷다보면 안내문과 유적지 소개 등을 통해 4·3의 역사와 문화, 주민들의 생활상 등을 느낄 수 있다.

안덕면 동광리 복지회관을 시작으로 큰넓궤를 지나 도엣궤까지 닿는 4·3길은 왕복 6㎞ 코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현재 큰넓궤와 도엣궤의 입구는 봉쇄되어 동굴 안을 들어갈 순 없지만, 칠흑 같은 암흑 속에 가슴 졸이며 지냈을 그 날의 아픔을 읽을 수 있다.

찾아가는 길=제주시 도심에서 서쪽으로 평화로(1135번)를 따라가다가 동광1교차로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이동해 동광육거리에서 대정 방면으로 직진하면 동광리복지회관에 나온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90번지 일대.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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