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실종? 살 수가 없어 '자살'한 것" 깊어지는 양봉농가 근심
"꿀벌 실종? 살 수가 없어 '자살'한 것" 깊어지는 양봉농가 근심
  • 이창준 기자
  • 승인 2023.03.16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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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꿀벌을 찾아서 (상) 속수무책 양봉농가
3년 전 최남단 제주서 시작된 꿀벌 실종ㆍ폐사 사태 매년 심화
양봉농가 5곳 중 3곳 이상 극심한 피해..."사체 빗자루로 쓸어 담아"
"실종이라기보단 병 걸려 자살"...데이터 없어 원인은 추정만 

전국적으로 꿀벌 실종 사태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1차산업 비중이 큰 제주에서는 꿀벌 실종에 따른 양봉농가와 과일농가의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원인으로 기후변화, 방제제 오남용, 밀원수 부족 등이 지목되나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공공기관, 학계, 환경단체, 양봉협회 등이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3회에 걸쳐 꿀벌 실종 사태의 총체적인 상황을 다뤄본다.[편집자주]

16일 오전 방문한 구좌읍 소재 이상일씨 양봉장. 꿀벌이 사라져 벌통들을 빼놓은 상황.

"실종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자살이죠. 살 수가 없는 환경인거에요.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겁니다."

16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에서 만난 양봉장을 운영하는 이순철씨(66)는 "40년 가까이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처음 겪는 일이다. 3년 전부터 꿀벌 실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양봉협회 제주도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이씨는 약재도 무농약으로 바꾸고, 한파에 전기난로까지 설치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꿀벌 실종 피해를 막지 못하고 있다.

4월 중순까지 벌을 기르고 7~9월 꿀을 따는 과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라진 꿀벌은 전체의 30~40%에 달한다. 이씨는 "변하는 환경에 맞춰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데이터가 없으니 역부족이다.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꿀벌 실종이라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자살이다. 군집생활을 하는 꿀벌은 한 마리가 병에 걸리면 집단이 병에 걸린다. 병에 걸린 벌은 알아서 떠나거나 쫒겨나는데 이 현상이 매년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벌을 살려야 한다. 이미 지인의 딸기 농장은 수분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꿀벌 실종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도 토로했다. 이씨는 "이 현상은 우리나라 최남단 제주에서부터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그러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꿀벌은 환경 특히 기온에 매우 예민하다. 최근 들어 이상기후가 심해지면서 그에 따라 꿀벌 실종 사태도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며 "꿀벌이 살 수가 없는 환경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16일 오전 방문한 구좌읍 소재 이상일씨 양봉장 곳곳에서 발견된 꿀벌 사체.
16일 오전 방문한 구좌읍 소재 이상일씨 양봉장의 빈 벌통.

제주시 구좌읍에서 양봉장을 운영하는 이상일씨(58)의 피해 상황은 더 심각했다. 그는 꿀벌 실종뿐만 아니라 폐사도 발생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올해 1월부터 피해가 시작됐는데 전체 꿀벌의 70%가 사라지거나 죽었다. 꿀벌이 돌아왔다 해도 자기 집을 못 찾거나 문 앞에서 죽어 있다. 사체를 빗자루로 수없이 쓸어 담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50통 주문이 들어왔는데 줄 게 없어 포기했다. 벌통의 3분의 2를 뺐다. 지금도 벌이 계속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23 제주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 계획’에 따르면 도내 양봉농가는 총 481곳, 사육봉군은 7만1927군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응애류로 인한 꿀벌 실종 및 폐사로 추정되는 피해 접수 건수는 80건이다. 또 지난해 12월 22일부터 24일, 올해 1월 24일부터 25일까지 두 차례 겨울철 한파로 인한 꿀벌 실종 및 폐사로 추정되는 피해 접수 건수는 각각 54건, 105건이다.

그러나 실제 피해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제주도는 “꿀벌 사체 청소로 인해 피해 신고 접수 불가 사항에 따른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실제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6일 오전 방문한 조천읍 소재 이순철씨 양봉장. 이씨가 벌통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16일 오전 방문한 구좌읍 소재 이상일씨 양봉장. 꿀벌이 사라져 벌통 구멍(갈색)을 모두 막아둔 모습.

 

이창준 기자  luckycjl@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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