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시인 “제주도민, 한라산과 삼무정신으로 점령군 대항”
김명식 시인 “제주도민, 한라산과 삼무정신으로 점령군 대항”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4.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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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미국군’이 점령한 사이에 터진 ‘4·3제주민중’의 항거와 투쟁이 누구에 대한 항거였는가,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는가, 그리고 그 주체는 누구였는가 하는 문제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분명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1945년 당시 북제주군 애월면 하귀리에서 태어난 김명식 시인(76)은 1988년 ‘제주민중항쟁’을 발간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4·3의 비극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김 시인은 28일 민주노총 제주본부에서 열린 ‘4·3운동 방향성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 참여해 4·3 항쟁 당시의 ‘제주도민의 힘’을 피력했다.

김 시인은 “제주 사람들은 (4·3 당시) 무기도 없었다. 죽창 몇 개, 실탄 없는 총 정도 갖고 있었을까. 그런데 4월 3일 같은 시간에 12개 지서를 한꺼번에 불 질렀다고 한다”며 “(당시 도민들에게) 그럴 힘이 있었을까? (무력 대응은) 다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제주 사람들은 어떻게 ‘제국’, 즉 미국에 대들었을까?”라고 질문을 던진 김 시인은 해답으로 한라산과 삼무정신을 꼽았다.

김 시인은 “무기도 없는 도민들이 어떤 배짱과 힘으로 싸웠을까. 이는 제주사람들이 한라산에 올라간 이유에 있다”며 “한라산은 (도민들에게) 어머니의 품이다. 어머니 품안에 가면 살 수 있겠다는 믿음과 그 힘으로 미국에 대항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주 사람들은 피가 섞이지 않아도 오순도순 사는 ‘이웃사촌’이었다”며 “오순도순 산다는 건 ‘너와 나는 평등하다’를 넘어 ‘너의 생명과 나의 생명은 똑같다’라는 인식에서 비롯됐고, 나아가 (미국에 대항하는) 힘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아닌 진정으로 모두가 평등한 삶을 살아온 제주 도민은 ‘삼무’(三無)에서도 드러난다고 김 시인은 강조했다.

김 시인은 “거지가 없다는 건 많이 가진 자도, 적게 가진 자도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한 가난, 마치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갓난아이처럼 평등했기 때문에 거지가 없었다”며 “또 거지가 없다는 것은 도둑이 없다는 것과 대비된다. 빼앗아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문이 없다는 건 돈이든, 지식이든, 독점하려 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한라산과 삼무, 이게 바로 제주도 사람들이 갖고 있는 힘이자 미점령군에게 대든 힘”이라고 피력했다.

끝으로 김 시인은 “제주 사람들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 점령군들은 이승만 정부와 군대, 순경, 서북청년단을 활용했다”며 “살해의 역사에 가담했던 미점령군, 이승만 집단, 극우 집단인 서북청년단 등은 스스로 회개하고 자기반성과 바른 역사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시인은 어린 시절 4·3을 경험한 후 서강대 철학과에 진학했으며, 1976년 당시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를 비판하는 시를 썼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을 살았다.

이후 김 시인은 4·3 관련 일본 자료와 미군정의 정보보고서인 ‘G-2 보고서’ 등 미국 자료를 수집·분석했으며, 1988년 ‘제주민중항쟁’을 발간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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