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고문 시달리다 수감된 생존 수형인도 모두 “무죄”
모진 고문 시달리다 수감된 생존 수형인도 모두 “무죄”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3.16 1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4·3 당시 일반재판에 기소돼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생존 수형인들이 74년이나 짊어져온 누명의 짐을 털어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4·3 당시 소요 및 내란실행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던 고태삼 할아버지(92)와 이재훈 할아버지(91)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을 열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고 할아버지는 19살이던 1947년 6월 6일 청년들이 개최한 ‘민청집회’를 덮친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단기 1년형을 선고 받아 인천형무소에 수감됐다.

이 할아버지는 18살이던 1947년 8월 13일 ‘삐라’(전단)를 단속하던 경찰이 마을 주민에게 총격을 가한 것에 항의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아 인천형무소에서 복역했다.

고 할아버지와 이 할아버지는 모두 경찰 조사 과정에서 모진 고문에 시달리며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은 “젊은 시절 교도소에 갈 만큼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모두 “없다”고 답했다.

이어 고 할아버지는 재판부를 향해 “여생이라도 편하게 살게 해 달라”며 74년 전처럼 무죄를 호소했다.

이 할아버지는 역시 “당시 학생 신분이었다. 죄 없는 학생을 데려다가 무차별하게 고문하고 없는 죄를 허위 자백하도록 유도해서 징역을 살았다”며 억울함을 피력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고, 무죄를 구형한 점을 종합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방 직후 국가로서의 완전한 정체성을 찾지 못할 때 4·3의 소용돌이에서 스무 살도 채 넘기지 못 한 청소년들을 상대로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실형을 선고했다”며 “두 분 모두 아흔을 훌쩍 넘겼지만 그동안 하소연 한 번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자신의 탓이거나 운명으로만 여기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 쌓인 응어리의 크기가 얼마인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무죄 판결이 여생동안 응어리를 푸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재판 직후 제주지방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4·3 당시 군사재판 관련 피해자 외에도 1947년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일반재판에 의한 피해자도 상당수”라며 “이 판결은 일반재판을 받은 수형인들을 구제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