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광복 75주년 경축식 ‘파묘 논란’으로 파행
제주도 광복 75주년 경축식 ‘파묘 논란’으로 파행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0.08.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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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주년을 맞아 제주에서 진행된 경축식이 ‘친일파 파묘 논란’으로 파행했다.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답사를 통해 비판하면서 경축식 자체가 항의와 고성으로 얼룩졌다.

제주도는 15일 제주시 조천체육관에서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제주 출신 故 강봉근 선생이 1930년 당시 광주학생운동을 이끄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 공로로 정부포상을 수상했다.

제주 출신 독립운동가가 정부포상을 받는 뜻깊은 행사는 광복회장의 기념사와 원 지사의 답사로 아수라장이 됐다.

김률근 광복회 제주도지부장은 이날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대독했다.

김 광복회장은 김률근 지부장을 통해 “찬란한 우리 민족의 미래에 발목을 잡는 것은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여 존재하는 세력이다. 친일청산은 한국 사회의 기저질환”이라며 “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는 보수와 진보가 아닌, 민족과 반민족이다. 친일·반민족세력이 민주·자주적 역량의 결집을 방해하고, 우리 젊은이들 앞에 펼쳐진 광활한 미래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에 민족을 외면한 세력이 보수라고 자처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친일을 비호하면서 자신을 보수라고 말하는 것은 매국노 이완용을 보수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반성 없는 민족 반역자를 끌어안는 것은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친일 청산은 여당·야당의 정파적 문제도 아니고 보수, 진보 이념의 문제도 아닌 국민의 명령”이라고 피력했다.

또 “광복회는 지난 3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 후보 1109명 전원에게 국립묘지에서 친일 반민족 인사의 묘를 이장할 것인지, 이장하지 않는다면 묘지에 친일행적비를 세우는 국립묘지법 개정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물었다”며 “지역구 당선자 총 253명 중 3분의 2가 넘는 190명이 찬성했다. 올해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답사를 위해 단상에 오른 원 지사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는 우리 국민의 대다수와 제주도민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치우친 역사관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를 대독하게끔 한 처사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제주도지사로서 기념사의 내용을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태어나 보니 일본 식민지였고, 일본 식민지의 신민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인생경로를 살았던 많은 사람이 있다”며 “비록 모두가 독립운동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았던 것이 죄는 아니다. 앞잡이는 단죄를 받아야 하지만 인간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특히 역사 앞에서 나라를 잃은 주권 없는 백성은 한없이 연약하기만 하다”고 강조했다.

원 지사는 또 “오늘의 선진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분의 공이 있었고, 그 공의 그늘에는 과도 있었다”며 “지금 75주년을 맞은 광복절 이때, 역사의 한 시기에 이편, 저편을 나눠서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받아야 한다는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조각내고 국민을 다시 편 가르기 하는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끝으로 원 지사는 “앞으로 이런 식의 기념사를 또 보낸다면 저희는 광복절 경축식에 모든 계획과 행정집행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원 지사의 강경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광복회원과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특히 경축식에 참석한 일부 제주도의회 의원들은 원 지사의 발언에 항의하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또 일부 청중들은 원 지사의 발언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는 등 경축식 행사장이 개개인의 역사관에 따라 터져 나온 고성과 항의, 박수 소리로 뒤범벅됐다.

결국 광복절 경축식을 마무리하는 ‘만세삼창’은 원 지사의 참여 없이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과 이석문 제주도교육감만 단상에 올라 진행됐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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