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없어요. 오늘도 연습할 뿐이죠”
“천재는 없어요. 오늘도 연습할 뿐이죠”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9.07.22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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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4살 때 비엔나 음대 예비학교 입학
20년간 유럽 무대 등서 최연소 협연
‘제2의 정경화’로 성장 가능성 기대

당찬 청년 음악가로 활발하게 활동
어려운 이웃 위한 나눔공연도 적극
“고향 무대 가장 떨리고 긴장돼”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삶을 이어 온 제주인(濟州人)들은 예로부터 불굴의 정신을 발휘하면서 발전하는 역사를 만들어 왔다. 제주인의 DNA는 분명 남다르다. 시대를 뛰어넘어 척박한 환경을 이겨 낸 개척 정신과 끊임없는 도전 정신, 독특한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해 온 수눌음 정신 등이 그것이다.
제주인의 강인한 DNA는 ‘변방의 섬’ 제주를 ‘글로벌 아일랜드’로 변화시키면서 이제는 전환점의 미래를 맞고 있다. 이는 다가 올 미래를 이끌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이에 본지는 제주인 정신을 조명하고 계승하기 위한 인물 발굴 프로젝트인 ‘2019 제주&제주인’을 시작한다.

제주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가 지난 3월 제주에서 가진 공연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제주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가 지난 3월 제주에서 가진 공연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지난 3월 서귀포시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음악회’ 공연을 위해 제주를 찾은 제주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씨(28)를 만났다. 4살 때 세계적 음악 명문대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한 이후 늘 최연소 타이틀을 기록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그녀는 훌륭한 음악가와 인간적 음악가를 꿈꾼다.

천재들은 어떻게 탄생할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세계적 주목을 받는 제주출신 김윤희(28)에게도 늘 쏟아지는 질문일 터, 타고난 유전자일까?

연습하지 않는 천재는 없어요, 사실 천재는 없거든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곡을 소화하고 미친 듯이 연습을 할 뿐이죠. 만족스런 연주를 끝낸 뒤 그 느낌, 그거예요

4살 때 세계적 음악 명문대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한 이후 그녀의 10대와 20대 무대는 늘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2의 정경화, 사라 장을 잇는 세계적인 연주가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 속에 이제 당찬 청년음악가가 된 김윤희는 천재음악이란 것보다는 와인처럼 깊이 숙성돼 있으면서도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했을 때 그 콩당콩당 뛰었던 심장소리가 느껴지는, 그런 연주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 천재음악가의탄생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 성악가가 꿈이었지만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윤희는 처음엔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아직도 제주도에서 살던 기억이 선명해요. 문예회관에 연주회가 있을 때마다 엄마 손을 잡고 갔었어요. 사실 처음엔 피아노를 했어요. 근데 하얗고 까만 건반들이 쭉 연결돼 있는 게 재미가 없었어요. 앉아서 하는 것도 싫었고. 어렵기도 했죠. 그래서 바이올린을 사 달라고 막 떼를 썼지요. 그래서 3살 생일선물로 받은 게 스즈끼 바이올린이었어요. 목에 착 감기는 느낌, 아직도 그 때가 기억나요

제주의 바람소리와 곁들여 어린 꼬마아이는 바이올린을 인생 최고의 장난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년 뒤 유럽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성악공부를 하던 이모를 만나러 오스트리아에 갔던 그녀는 바이올린으로 멋드러진 연주를 했고 조카의 놀라운 재능에 놀란 이모의 손에 이끌려 그녀는 폴라첵 교수(우크라이나 출신)를 또 한 번 감동시켰다.

그리고 5살엔 헝가리 사바리아 오케스트라와 협연이란 놀라운 일을 벌였고 노르웨이 왕립 트론하임 오케스트라 정기공연을 13살 최연소로 이뤄냈다. 스페인 국립방송 오케스트라 최연소 협연은 14살이었다. 15살엔 독일 스튜트가르트 필하모니 최연소 협연, 16세에 몬테카를로 필하모니 최연소 협연, 그리고 17살엔 마드리드 국립방송오케스트라 협연과 고국인 KBS 교향악단과 최연소로 협연하는 기록들이 쓰여졌다. 19살 비엔나 국립음대 최연소 졸업생이기도 하다.

신동 바이올리니스트’(CNN), ‘세계 30대 미스터리’(프랑스 TF1)라는 언론의 찬사는 결코 과분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물었다.

유럽에서는 아시아인들의 연주에 대해 기계적이라거나 개성적이지 않다는 선입견들이 있어요. 16살 때 몬테카를로 필하모니 공연이 끝나고 저도 행복한 연주였다고 만족했는데, 다음 날 신문 1면에 제 기사가 난 거예요. 한국식으로 대문짝만하게 나온 거죠. 눈을 의심했어요. 더구나 제 공연날은 프랑스 최고 디자이너인 이브셍로랑이 돌아가신 날이라, 언론매체들이 관심이 적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 분의 기사는 1면에 작게 보도되고, 제가 크게 나와서 어찌나 놀랐던지, 그 때 길거리 가판에서 산 신문을 아직도 갖고 있어요

카네기홀 공연도 이야기했다.

제가 연주 후에 울지 않는데 그 때는 막 눈물이 쏟아졌어요. 왜 울었는지는 논리적으로는 설명은 안 돼요.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거든요. 무대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계속 저를 몰아쳤던 것 같아요

■ 지독한연습벌레

그녀의 여러 에피소드들은 지독한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많을 땐 하루 10시간씩, 16살 때까지 단 하루도 연습을 빼놓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파도 매일 연습했던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해야 한다는 주문 같은 걸 걸어놨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 제가 만족하는 연주를 하고 싶었거든요. 방법은 한 가지, 연습밖에 없는 거죠

어려서부터 무대에 섰던 그녀에게 공항 화장실은 단골 연습장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연습장소를 물색하다 엄마와 공항 화장실 베이비룸으로 가게 됐어요. 그 때도 연습이 부족했다고 느꼈고 시간도 부족했거든요. 한 번은 프랑크푸르트 공항 베이비 룸에서 연습을 하는데 경찰이 왔어요. 연주회 준비를 한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갔어요. 뮌헨 공항에서는 공항 관계자가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로비에서 연습해 달라고 요청을 받기도 했어요. 그 땐 어리기도 했고 화장실 연습이 싫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 앞으로의꿈과미래

꿈을 물었다. 훌륭한 음악가라고 예상했지만, 조금은 다른 답이 되돌아왔다.

물론 훌륭한 음악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거죠. 나이가 들어서도 녹슬지 않는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건강을 유지하며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요즘엔 어떤 음악을 하느냐가 더 고민이예요. 인간적인 음악가가 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나눔공연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려운 환경의 이웃들을 위한 무대라면 국경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재능기부에 나서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롤 모델이 궁금했다. 유명 음악가 대신 나온 이름은 어머니.

엄마는 늘 제주여성의 강인함을 얘기하곤 했어요. ‘당당해야 한다’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돌이켜 보면 저를 만들어준 건 어머니에요. 늘 제가 연습할 때 곁에서 지켜봐 주셨고, 힘들 땐 친구가 돼주셨지만 연주에선 가장 혹독한 비평가에요. 숨소리 하나, 눈빛만으로도 제 심리상태를 훤히 꿰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서른 살을 향해 가다보니 연주가가 연주를 위해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어요. 그리고 성인으로서 제 행동이나 말들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음악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을 하나씩 엄마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제주무대를 밟는 소감을 묻자 제주는 가야하는 곳이예요. 제가 거절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고향이니까요. 제주가 가장 떨리고 긴장되거든요. 음악가들은 고향에서 갖는 무대가 가장 긴장된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그녀의 한 마디. “지금도 마음을 컨트롤해야 할 때면 제가 좋아했던 화북 앞바다의 파도소리를 머릿속으로 그려요. 아직은 부족하지만 더 많은 실력을 쌓아서 고향에 보탬이 될 수 있을 때, 그 때 꼭 제주에서 불러주면 좋겠어요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는…

천재 바이올니스트 김윤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4살 때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한 뒤 20여 년간 세계적 무대를 밟고 있다. 제2의 정경화, 사라 장을 잇는 연주가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출신인 어머니 유소방씨(56)는 제주여고와 경희대 영문학과를 졸업, 현재 유럽과 한국을 잇는 활발한 문화교류에 역할을 하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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