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족, 그리고 조배죽
폐족, 그리고 조배죽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2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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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폐족(廢族). 사전에서 의미를 찾으면 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됨. 또는 그런 족속을 뜻한다. 이 폐족이 올 6·13 지방선거가 끝난 뒤 회자된다. 올 6월 여론의 복판에 오른 폐족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많은 사람들은 2006년 당시 5·31 지방선거에서 완패한 열린우리당을 떠올린다. 당시 집권당이자 친노세력이 주축이던 열린우리당은 그 해 지방선거에서 16개 광역단체장 중 전북지사를 제외하고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서울에선 구청장 25석 모두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에 빼앗겼다.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이유는 계파싸움에 빠져 민심을 놓친 탓이다. 반면 분위기를 탔던 한나라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득표율 22.6%포인트 차이로 대패했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81석(통합민주당)에 그쳐, 153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에 완패했다.

이에 친노 세력은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선언하고 정치권에서 퇴장했다.

#10년 권토중래 끝 부활

친노로 상징되는 진보진영을 떠나간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영원히 우리 정치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 폐족이 부활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등은 폐족 선언 후 부활한 대표적 친노 정치인이다.

이번 제주도지사 선거전은 시작부터 숱한 소문과 억측들이 난무한 가운데 출발했다. 다름 아닌 ‘조배죽’으로 상징되는 과거 제주 도정의 공공연한 선거 개입설이다. 선거 초반 어젠다를 독점한 ‘조배죽’은 출현 그 자체가 제주도지사 초반 판세를 아래서부터 뒤흔들었다.

결국 민심이반의 도화선이 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배죽’은 말 그대로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라는 말로 상징된다.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다.

그런데 이게 과거 한때 제주 도정과 연루된 특정인을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자행됐다는 점이다. 누가 보더라도 비정상이다. 제주도는 그 자체가 제주도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지방 권력일 뿐이다. 따라서 그 조직 운영의 기본 틀은 투명과 공정함이다.

그런데 ‘조배죽’이라 상징되는 지방 권력은 달리 움직였다. 조직 내 자율성은 실종됐으며, 특정인을 중심으로 하는 절대적 상명하복만 존재했다. ‘내편’이 아니면 철저하게 배제됐다. 온갖 특혜의혹이 이어졌다.

지방정부라는 공조직은 1인 중심의 사조직을 방불케 했다.

#아무 반성 없이 선거판 나와

지금 뭍 언론은 10여 년 전 스스로 폐족을 선언했던 노무현 정부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정치지형을 이해하려고 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비극적 최후를 선택해 자기 세력을 살렸고, 친노는 스스로를 ‘폐족’이라며 모든 것을 버렸다. 이어 권토중래 끝에 10여 년 만에 다시 살아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거 한때 제주 지방정치의 한 축이었던 ‘조배죽’은 불과 몇 년 전 도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선거판에 이름조차 못 올리는 최악의 정치상황을 맞았다. 제주판 폐족이 달리 없다. 그런 그들이 퇴임의 잉크가 마를까 말까 한데 선거판을 찾았다. (도민들이)알아도 괜찮고,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듯 선거현장으로 나왔다.

한 줌 될까 말까 한 ‘조직’을 이용해 선거판에 줄을 댔다. 이유는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음습함이다. 과거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은 커녕 되레 당당한 척 새로운 제주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민의의 심판장에 뛰어든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몰염치다.

이를 모를리 없는 도민들은 기득권 수구세력으로 각인된 ‘조배죽’ 대신 상대후보를 붓두껍으로 꾹 꾹 눌렀다. ‘조배죽’에 회초리를 들었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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