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이 희생된 주민들 아픔 느낄 수 있는 곳"
"죄 없이 희생된 주민들 아픔 느낄 수 있는 곳"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6.1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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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용 제주4·3문화해설사회 회장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무장대와 토벌대 중간에서 아무런 죄 없이 희생당한 금악리 주민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길이에요. 잃어버린 마을을 보다보면 4·3은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된 마을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금악마을 4·3길의 안내를 맡고 있는 김성용 제주4·3문화해설사회 회장(67)은 “금악리는 무장대와 토벌대에 끼어서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곳”이라며 “하지만 그러한 기억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4·3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아직까지 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도내 다른 4·3길과 달리 금악마을 4·3길의 안내는 마을 사람이 아닌 제주4·3문화해설사회가 도맡아하고 있다.

김 회장은 “주말에는 상주하고, 주중에는 예약이나 단체 답사 등의 연락을 받고 안내를 하고 있다”며 “금악마을 4·3길은 할망당, 하르방당, 처녀당 등 신당 3곳을 끼고 있고 잃어버린 마을 6곳이 포함돼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마을사람들에게 4·3은 금기시되는 단어”라며 “최근에야 조금씩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4·3에 대한 구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갈라진 길을 뜻하는 제주어인 가름으로 마을을 나누곤 했는데 금악리 마을들은 4·3을 통해 갈기갈기 찢겨지고, 폐허가 되면서 잃어버린 마을들로 남았다”며 “무장대와 토벌대, 양민들이 뒤섞여 살았던 마을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돼 피해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만벵듸 묘역의 경우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인 1950년 8월 20일 새벽에 한림 및 무릉지서에 예비검속으로 끌려가 모슬포 섯알오름 탄약고터에서 집단학살된 주민 62명 중 46위가 안장됐다”며 “한림지역 우익인사부터 농사밖에 모르는 농부와 부녀자들이 끌려가 죽임을 당했는데 1956년 3월에야 시신을 수습해 이곳에 안장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다른 4·3길도 저마다 사연이 있고 특징이 있지만 금악마을 4·3길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자신도 모르게 휘말려 희생된 순박한 마을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자신의 마을을 떠나 떠돌던 제주인들의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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