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버(Giver)를 기대한다
기버(Giver)를 기대한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1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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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호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주고 받음(give and take)’은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각종 관계의 핵심원리라 할 수 있다. 인간 사회를 구분하는 단위에 따라서 그 특성의 차이는 일부 존재하겠지만, 주고 받음은 관계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담보하는 근본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면 후배가 똑같이 선배에게 밥을 살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에게 동일한 효용을 갖는 다른 방식 예를 들어, 선배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갚아야 한다. 밥을 사준 선배를 봐도 인사하지 않고 피하면 둘의 주고 받음에는 불균형이 생기게 되고, 이는 관계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해치게 된다. 주고 받음이 적어도 효용상의 등가(等價)를 이룰 때, 그 관계는 안정성과 지속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주고 받음이 등가를 이루는 상태를 평형상태(equilibrium)라 한다.

기업경영을 예로 들어보면, 근로자는 노동력을 통해 기업에 기여한다. 그러면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로서의 보상을 근로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일종의 기업 내부적 주고 받음일 것이다. 또한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도록 정부는 공항,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을 제공한다. 그러면 기업은 세금을 성실히 납부해야 한다. 소비자가 기업의 물건을 구매하면 기업은 소비자에게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해야 한다. 주주가 기업의 주식을 사주면 기업은 주식 가치를 높여 주주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해야 한다. 공급업체가 필요한 원자재를 납품하면 기업은 그 대금을 제대로 지불해야 한다. 이는 기업 외부적 주고 받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인간 사회의 구성단위 중 하나인 기업을 놓고 봐도 주고 받음이 등가를 이루는 평형상태일 때 기업 내부 주체 간 관계와 기업과 사회 간 관계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주고 받음의 원리가 반드시 특정 시점에 한정된 단기적인 주고 받음의 등가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간혹 접하는 미담인 어려울 때 신세진 것을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겨서 갚았다는 미담 등은 주고 받음의 원리를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고 받음에 대한 보다 학술적 표현인 상호호혜성 규범(norm of reciprocity)은 먼저 줌으로써 상대에게 의무감(obligation)을 갖게 하는 것이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갈등관리나 협상에서도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양보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장려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오리지널스’로 알려진 세계적 조직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Adam M. Grant)는 그의 저서 ‘Give and Take’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성공의 중요한 요소임을 제시하면서,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소개한다. 테이커(taker)는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이다. 매처(matcher)는 받는 만큼 주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기버(Giver)는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쁜 와중에도 누군가를 돕고, 지식과 정보를 기꺼이 공유하며,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테이커와 매처만 많으면 사회가 각박하니 기버를 해야 한다는 규범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흥미롭게도 그는 소위 성공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테이커 내지는 매처보다 오히려 기버가 성공 사다리의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다각적으로 입증한다.

기버는 통상의 관계가 지향하는 현상유지적인 평형상태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전체 파이를 키우는 역동적 평형상태(dynamic equilibrium)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주고 받음에 있어 조금이라도 덜 주고 더 받으려는 사람, 받은 만큼만 주려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너무 계산하지 않고 먼저 최선의 것을 더 주려는 사람,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그만큼의 고마운 마음, 감동의 마음으로 더한 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 즉, 계산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관계를 통한 전체 파이를 키우는 사람인 기버일 것이다.

늘 선거 때마다 다른 영역의 사람들보다 정치인과 행정가 중에 이런 기버가 많이 나왔으면, 많이 뽑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아니 원래는 아니었더라도 나와서 뽑힌 사람이 적어도 임기동안 기버로 일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받은 것을 잘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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