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위한 죽음과 400년의 방랑…
옛 왕궁에 아로새겨진 슬픈 역사
명예 위한 죽음과 400년의 방랑…
옛 왕궁에 아로새겨진 슬픈 역사
  • 제주일보
  • 승인 2018.0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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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39)역사적 도시 품은 서부 인도를 찾아서<12>-치토르가르④
치토르가르 성 북쪽 방면에 세워진 명예의 탑. 탑 옆으로는 사원으로 보이는 건물이 자리해 있다. 명예의 탑은 12세기쯤 ‘승리의 탑’보다 먼저 세워졌다고 한다. 높이는 22m다.

[제주일보] 지금 제가 앉아 있는 곳은 비운의 왕비 파드미니가 살았다는 여름궁전 건너편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입니다.

이 건물에서 술탄이 멀리 궁전의 계단에 서 있는 파드미니 왕비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봤다는데 확실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름궁전 주변은 치토르가르를 찾아온 관광객들과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 나는 다시 뒤로 돌아 작은 동산에 올랐습니다.

혹시 치토르가르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일까 했으나 날씨가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아 나머지 못 본 곳을 가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대형버스가 다닐 수 없는 길이어서 성 안에서만 이용되는 소형차를 타고 찾아간 곳은 ‘명예의 탑’입니다.

명예 의 탑 에 새 겨 진 조 각 모습.

둘레가 36㎞에 이르는 성을 걸어서 다니기는 시간이 빡빡하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대부분 여름궁전까지만 돌아보고 간다는군요.

차라리 성 부근에서 숙박해 내일 새벽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지만 불가능한 일이지요.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치토르가르 성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머물며 사진을 찍었으면 참 좋겠다는 당치도 않는 상상을 하는데 명예의 탑에 도착했다는군요.

이곳은 성의 북쪽 끝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왕궁 터와 여름궁전 등을 먼저 돌아봐서 인지 거대한 탑인데도 큰 기대를 않게 되네요. 차에서 내려 탑을 자세히 보니 둘레에 수많은 조각들이 놀랍습니다.

탑 옆에는 같은 시대에 지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원처럼 생긴 건물이 서 있군요. 자칫 사원에 속한 탑으로 여겨질 수 있겠네요.

명예의 탑은 12세기쯤 ‘승리의 탑’보다 먼저 세워졌고 높이는 22m 정도입니다. 탑 전체에 수많은 조각들이 ‘와~’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날씨도 점점 흐려지고 이제 치토르가르의 모든 일정을 정리할 시간인 듯합니다. 이번 치토르가르 여정에서 듣게 된 한 토막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수백년을 떠도는 로하르족과 조하르 의식으로 생을 달리한 메와르 여인들. 이들의 슬픈 이야기는 서인도 여행에서 저를 가장 감격스럽게 했습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치토르가르 역사를 다시 정리해 봤습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여름궁전 건너편에 있는 건물. 이곳에서 술탄이 거울을 통해 파드미니 왕비의 모습을 봤다고 한다.

메와르의 힌두 왕들은 ‘영웅본색’의 용감한 지도자였지만 압도적 병력으로 침략한 무술제국에 패하며 결국 도주하게 됐습니다. 도시에 남은 군인과 여인들은 적에게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명예로운 자살을 택했습니다. 로하르족도 치토르가르를 탈환한 뒤 돌아오겠다고 왕에게 맹세하고 정처 없이 떠돌게 됩니다. 하지만 왕은 끝내 치토르가르에 돌아오지 못하고 인근 우다이푸르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치토르가르를 찾았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에 보면 로하르족은 본업이 대장장이로 농기구를 고치고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이들은 영원히 지킬 수 없는 약속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400년 동안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방금 전의 약속도 깨는 세상인데 4세기 동안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지킬 수 없는 약속에 매여 있는 그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떠나는 길, 자꾸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이번 서인도 여행의 종착점인 라자스탄의 주도인 자이푸르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 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계속>

 

■ 치토르가르에서 보내는 편지

영석이 엄마.

나는 지금 비운의 파드미니 왕비의 여름궁전을 돌아보다가 높은 성터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답니다. 이곳 치토르가르에 오기 전까지 이 옛 궁터가 이렇게 비참하고 슬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인 줄도 몰랐네요. 사진을 찍다가 잠깐 실수로 건물 위에서 떨어지면서 몸을 약간 다쳤어요. 그래서 잠시 쉬고 있는데 같이 온 일행 중 김 선생이 파드미니 왕비의 슬픈 역사를 들려주네요. 얼른 가져온 자료집을 들춰보니 이곳은 기막힌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군요. 그 옛날 화려했던 영화의 흔적은 이슬람에 의해 무참히 파괴됐지만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요. 가는 곳마다 메와르 여인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며 질렀던 비명이 들리는 듯하고 그 여인들이 타 죽으면서 남긴 재를 이마에 바르고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라지푸트 전사들의 숨결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요.

인도에 와서 몇 개의 옛 왕궁을 돌아봤지만 이곳 메와르 왕궁 터에 와서는 나도 모르게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네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식들을 도피시키고 시집 올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메와르 여인들의 이야기 때문 만은 아닌 듯 싶은데…. 왠지 모르게 슬퍼지네요. 그래서 ‘인도는 세 번 오면 못 나갈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곳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긴 하지만 메와르 여인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네요.

가만히 보니 내가 앉아있는 장소가 그 옛날 술탄이 파드미니 왕비를 보기 위해 머물렀다는 건물이네요.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여름궁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계단에 서 있는 파드미니 왕비의 환영이 보이는 듯 하네요. 착각은 자유겠죠.

별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얼른 일어나 다시 치토르가르의 옛 모습을 찾아가 볼게요. 안녕~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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