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대한 약간의 다른 생각
통일에 대한 약간의 다른 생각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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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제주일보]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울컥한 마음과 당혹스러움도 느껴진다. 정상회담을 바라보며 오히려 통일의 과정이 천천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거나 어쩌면 오랫동안 통일 대신 양 체제가 협력적 경쟁을 지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게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향해 걸어 내려오는 순간, 군산분계선 앞에서 걸어와 웃으며 악수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10초 간의 월경 후 다시 내려오는 장면을 보는 순간, 보도다리에 앉아 30분 간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통일 역시 틀에 박힌 뻔한 생각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갑작스런 통일반대론을 운운하는 게 이상할테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가 이야기는 통일은 흡수통일의 다른 표현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도 그렇거니와 늘 통일은 체제간 경쟁의 산물로 여겨졌다. 북한체제가 어느날 동독처럼 갑자기 붕괴할 것이고 경제 시스템이 망가져 대량 난민 사태가 발생할 것이니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체제가 붕괴되면서 사회의 불안정성을 남한이 모두 책임져야 하고 엄청난 통일비용을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 등 통일의 기본 전제는 북한 체제의 붕괴가 근저에 깔여 있었다.

정상회담 이후 인터넷과 SNS에 갑자기 부산 출발 베를린 도착 가상 열차 승차권이 떠돈다. 상상하기만 해도 기분좋은 티켓이다.

기차를 타고 부산을 출발해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을 간다. 언젠가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상상했던 모습이었고 이루어지길 희망하던 내용이었다. 단 하루의 회담임에도 사람들이 벌써부터 그 가능성을 꿈꾼다. 제주에서 평양과 신의주행 비행기가 수시로 오가는 상황도 상상 가능하고 제주를 찾는 북한 관광객들도 생각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벼랑 끝 정책을 추구했던 바는 익히 잘 알려진 일이다. 이제 벼랑끝을 벗어나 자신의 집권에 자신감이 붙어 대외적인 체제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목표를 세운 듯 하다. 어찌보면 통일이라는 목표는 있으되 남과 북이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라는 목표가 달성되면 될 일이다. 그 와중에 이산가족이 고향을 방문하고 경제가 통합될 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3대 세습과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을 일삼고 핵 개발을 추진하는 은둔의 북한 지도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남으로 내려오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단 하루이긴 해도 그는 자신 역시 체제안정과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똑같은 지도자라는 인상을 남기고 돌아갔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굳이 통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통일의 당위성에 집착하는 나이든 세대나 6·25전쟁의 경험을 강조하는 세대들 입장에서 보면 서운할 일이겠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통일은 다소 다른 의미로 다가설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오롯이 이해하고 기성세대와 같은 감성을 유지하도록 기대하는 일은 집착일 뿐이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남북 분단과 전쟁의 역사적 경험을 선대로부터 이어 받았겠지만 스위스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지도자 수업을 받은 30대 젊은이라면 북한의 현실을 다른 나라의 현실과 비교할 수 있는 경험과 판단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에게는 정권유지라는 절대 절명의 목표가 있었을 터이고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도 고민했을 터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자신감은 개방을 하고 교류를 확대해도 체제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근거한다. 그 자신감이 서 있다면 북한사회의 경제번영을 추구하는 일은 현실적인 선택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 자신감을 확신하기를 바란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남북이 통일을 목표로 따로 또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 그래야 베를린 열차티켓을 하루라도 빨리 끊을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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