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죽기 전에 고향 갈 수 있다는 희망 생겨”
이산가족 “죽기 전에 고향 갈 수 있다는 희망 생겨”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4.2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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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설태건, 유병식, 박춘실, 박용수씨.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냉전을 종식시키고 영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로 하자 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이산가족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8·15 광복절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눈시울을 붉히며 기뻐하는 한편 고령으로 몸은 좋지 않지만 죽기 전에 가족을 꼭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함경북도 성진시(현 김책시)가 고향인 설태건씨(83)는 “1·4 후퇴때 17살의 나이로 가족들과 이별했는데 10여 년 전에 부모님과 동생은 죽고, 조카가 고향에 있다는 소식을 탈북자한테 들었다”며 “죽기 전에 고향 땅을 한번 밟아 보고 성묘라도 실컷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씨는 “고향 방문과 이산가족 상봉이 이번 생에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살아서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며 “아프지 말고 고향 땅 밟을 때까지 오래 살아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인 유병식씨(81)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때 고향을 떠나 단 한시도 고향을 잊은 적 없다”며 “이번 정상회담을 보면서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유씨는 “고향을 찾아 흙도 만지고 물도 마시고 싶고, 할아버지·할머니 묘소에 성묘도 하고 싶다”며 “고향집과 어릴적 놀던 친구들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고 말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사는 박춘실씨(87·여)는 “평안남도 용강군 오신면 송성리가 고향인데 아버지, 어머니는 죽고 여동생 셋하고 사촌들이 고향에 살고 있을 것”이라며 “너무 보고 싶은데 제발 고향 보내주세요. 죽더라도 고향에 가서 죽고 싶다”고 울먹였다.

박씨는 “3일만 있으면 돌아올 수 있다고 해서 대동강 건너서 왔는데 이렇게 68년간 떨어져 살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식구들 못보고, 고향 땅 밟지 못하고 죽으면 너무 원통할 것 같은데 제발 고향으로 데려가 달라”고 흐느꼈다.

평안남도 안주시에 살던 박용수씨(86)는 “2002년 제주도민 북한방문단에 포함돼 평양에서 묘향산 가는 길에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지나치고, 고향 흙 하나 가져오지 못했다”며 “실향민 1세대들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고향에 갈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한다”고 말했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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