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위대한 승리의 탑이여”
“아~위대한 승리의 탑이여”
  • 제주일보
  • 승인 20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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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37)역사적 도시 품은 서부 인도를 찾아서<10>-치토르가르②
그 옛날 화려했던 메와르 왕궁 터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예전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작업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제주일보] 치토르가르의 요새는 둘레가 36㎞에 달하는 인도에서 가장 큰 요새이자 라자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였답니다.

어느 나라든 중요한 성들은 대부분 높은 지역, 독특한 지형을 이룬 곳에 쌓는데 인도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사막지대나 또는 거대한 암벽지대에 성을 쌓았는데 아마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이런 지형을 이용한 모양입니다.

앞서 보았던 자이살메르나 조드푸르, 우다이푸르도 그렇고 치토르가르 요새도 높은 지대에 위치해 1㎞ 이상을 지그재그로 올라가야 성 정문에 닿을 수 있습니다. 성 정문에서는 뿔 모양의 람뿔(Rampot)을 볼 수 있습니다. 요새 전체에 7개가 있었다는군요. 성 안에 궁전과 사원, 탑, 저수지 등이 들어섰답니다.

희뿌연 날씨 때문에 높이 솟은 ‘승리의 탑’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 너머로 우리 일행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일단은 안심하고 물을 마시며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생각해야겠습니다. 여러 학교에서 이곳에 답사를 왔는 지 가는 곳마다 학생들로 붐비고 있네요. 치토르가르 요새가 워낙 슬픈 역사를 지닌 유적지이니 당연히 후손들에게는 큰 관심의 현장이겠죠.

치토르가르는 라지푸트족이 세운 메와르 왕조의 수도였습니다. 델리를 점령한 이슬람 왕조에 의해 세 차례에 걸쳐 침탈당했는데 그 때마다 라지푸트족은 ‘조하르(Johar·집단자살)’를 행했다고 합니다.

관광객들이 요새 성문에 있는 원뿔 모양의 ‘람뿔’을 살펴보고 있다.

메와르 왕조의 용사들은 결코 항복하지 않고 싸우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밀려드는 이슬람 세력에 맞서기엔 중과부적이었고, 결국 1303년에 수도인 치토르가르가 함락됐습니다. 이 때 메와르 여인들은 아이들을 안전한 곳에 도피시킨 뒤 시집올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불에 뛰어들어 분사했답니다.

졸지에 아내를 잃은 남편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 용맹한 메와르 전사들은 아내들을 태우고 남은 재를 이마에 바르며 마약으로 의식을 마비시킨 채 죽음을 맞기 위해 전장으로 돌진하는 조하르 의식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기록들을 읽으면서 치토르가르에 대한 느낌을 다시 하게 됩니다.

치토르가르는 1567년에 또다시 조하르 의식을 감행하는 시련을 겪는데 견디다 못한 메와르 왕조는 1568년 천도를 결정해 오늘날 호반도시로 유명한 우다이푸르로 수도를 옮기게 됐습니다. 이로써 메와르 왕조와 함께했던 치토르가르는 역사 속의 작은 흔적으로 남게 됐다고 합니다.

메와르 군이 연합군을 격퇴한 것을 기념해 세운 ‘승리의 탑’. 1448년부터 20년에 걸쳐 39m의 높이로 세워졌다.

이 슬픔에 도시를 어떻게 기록할까?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오더니 언제 누구한테 들었는지 “아까 저쪽에서 크게 다치셨다면서요. 괜찮습니까?”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위로해 줍니다.

“아 예~조금”하고 부끄럽기도 해 얼른 말을 흘려버렸지요. 이제 일행과 만났으니 서둘러 사진을 찍어야겠습니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허물어지다 남은 유적을 아주 천천히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되고 있으며, 사원에서는 지금도 신도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허물어진 왕궁과 사원들을 복원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주변 건축물을 발굴하며 나온 자재를 이용해 하나씩 쌓고 있습니다. ‘아, 이런 것이 복원작업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 제주처럼 옛 것을 다 허물어버리고 새로 쌓는 것은 복원이 아니라 신축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도 문화재 복원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멀쩡한 성을 허물고 새로 쌓는 것은 복원이 아닌 파괴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멀리 인도에 와서 하게 됩니다.

인도사람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적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아직도 그 형태 등이 완벽하게 남아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군요.

지금 제가 돌아다니고 있는 치토르가르의 메와르 왕궁 터는 돌아보면 볼수록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거의 폐허가 돼 부분적으로 남아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옛날의 영화를 느껴 볼 수 있는 옛터입니다.

아까 반대 편에서 승리의 탑을 봤을 때는 탑 전체에 새겨진 조각들을 볼 수 없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눈부시게 황홀하군요. 탑 전체를 돌며 신들을 받들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 등 다양한 조각들이 새겨져 눈길을 끄는데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탑이 얼마나 정교하고 화려하던지 아픈 것도 잊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답니다.

한참 동안 승리의 탑을 찍는데 돌연 ‘무굴제국에 함락돼 페허가 된 요새인데 승리의 탑이라니’하고 의아해 졌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가이드한테 물었지요.

설명을 들으니 비극의 도시 치토르가르에도 승리의 역사가 있었다는군요. 1448년 세워진 치토르가르의 ‘바자이 탑(Vijaya Stambha)’은 이름 그대로 ‘승리의 탑’, ‘전승기념 탑’이랍니다. 중세 인도는 힌두교 왕국과 무슬림 술탄국 등 여러 중소왕국들이 군웅할거하며 세력 다툼을 벌였고, 특히 라자스탄 지역은 서방으로 이어지는 동서교역의 요지였다고 합니다.

당시 생활상을 보여 주는 탑 벽면의 조각들.

당시 치토르가르는 라지푸트족인 메와르 왕조의 마하라나 쿰바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150m 고지에 위치한 치토르가르의 요새는 인도에서 가장 긴 요새로 중세(7~16세기)의 전략 요충지였답니다.

1435년 전력의 열세에도 메와르 군은 임전무퇴의 각오로 전쟁에 임해 끝내 연합군을 격퇴시키는데 그 승리의 순간 쿰바는 “이제껏 이런 승리는 없었다. 전례에 없는 건축물을 지어 승리를 기념할 것이다”라고 포효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어진 것이 바로 바자이 탑, 즉 승리의 탑이랍니다.

승리의 탑은 1448~1468년에 걸쳐 39m의 높이로 세워졌습니다. 수차례의 전쟁 끝에 수도를 천도하던 해에 탑이 완성됐다는군요.

그렇게 많은 여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 속에 몸을 내던졌던 과정 속에서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처럼 위대한 탑을 20여 년에 걸쳐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라지푸트족의 위대함에 머리가 숙여지는군요. “아~위대한 승리의 탑이여 영원하라.”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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