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 한 상자
한라봉 한 상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1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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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제주시 삼양동주민센터

[제주일보] 복지 상담을 위해 한 할머니댁을 방문했는데 귤 두 개를 받았다. 할머니는 주민센터에서 본인 이야기를 들어주러 왔다며 상자 가득 있는 귤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요즘에 이런 거 받으면 큰일난다고 거절하니 “내 딸 같아서 그래~. 커피 한 잔도 못 주고, 가면서 먹어”라며 양손에 꼭 쥐어주신다.

귤을 보니 예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복지기관에 사업비를 지원하는 업무가 많았던 곳이었다.

사업이 마무리되고 결과 보고서를 받는 시기가 되면 기관마다 A4용지가 두툼하게 묶인 서류를 한 아름씩 안고 사무실을 오갔다. 당시 기관 담당자들은 사무실을 방문하며 친분이 있는 직원들에게 종종 간식거리를 사 오곤 했다. 그날은 한라봉 한 상자가 사무실에 왔다. 다들 바쁜 터라 누가 가져다 놨는지 몰랐고 사업 결과를 평가하는 때라 받을 수 없다고 해 결국 한라봉 한 상자는 창고 한 편에 놓였다.

결과 보고서 평가를 진행하기 위해 서류를 정리하는데 한 기관의 서류가 보이지 않았다. 제출했다고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담당자는 며칠 애를 먹었다. 찾는 걸 포기하려는 찰나 한라봉 상자가 생각났다. 혹시나 해 상자를 열어봤는데 보고서가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 다행히 결과 보고를 잘 봐달라는 청탁의 한라봉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우리라면 고민하지 않고 보낸 사람을 찾고 반송했을 것이다.

지금은 삼양동주민센터 맞춤형 복지팀에서 사례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많은 분들을 만나다 보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힘써달라는 청탁(?)을 받곤 한다. 그럴 때면 공공 급여 기준에 벗어나는 경우 도움을 줄 수 있는 후원자나 민간단체를 알아보겠다고 말씀드린다. 옛날 한라봉 한 상자에 어쩔 줄 몰라 했던 신입 직원이 아니다. 나의 양심을 지키고 직업의식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 그것이 청렴이 아닐까 생각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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