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미학 탐닉했던 ‘천재’
‘시대의 유산’으로 환생하다
한국적 미학 탐닉했던 ‘천재’
‘시대의 유산’으로 환생하다
  • 박수진
  • 승인 2016.02.01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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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낳은 천재 화가 강태석 40주기(上)

‘시대의 유산’이라 불리는 강태석(1938~1976년) 화백. 제주에서 학생 신분으로 개인전을 처음으로 개최한 그는 일찍이 화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그러나 그는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지만 미술계에 회의를 느껴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제주도로 귀향했다.

이후 그는 제도권의 답습을 거부하고 스스로 한국적인 미학을 찾기 위해 실험 정신 속에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그는 한국적이고 제주적인 미학을 찾는 과정에서 폐결핵으로 1976년 3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예술세계와 일대기를 40주기 기일(양력 2월 1일)에 맞춰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제주시 일도2동 출신인 강태석 화백은 제주북초등학교와 오현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가 서울행을 택한 이유는 화가 홍종명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한국전쟁 당시 제주로 피난 왔던 홍종명은 1952년 오현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다. 또한 이무렵 어느 독지가의 지원으로 제주시 칠성통 부근에서 화실 ‘미술사’를 열고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강태석과 홍종명의 인연은 화실 입구에 걸린 ‘그림을 무료로 가르쳐 드립니다’라는 글에서 시작됐다.

강태석은 어렸을 때부터 기억력이 남달랐다. 지금의 동문로터리 부근에는 기상을 관측하는 측후소(測候所)가 있었다. 하루는 홍종명과 학생들이 이곳 계단을 올랐다. 홍종명은 학생들에게 ‘우리가 올라온 계단이 모두 몇 개냐’고 묻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황스러워 했지만, 강태석만이 정확히 계단의 개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수학에도 능통했다. 강태석의 동생 강영자씨가 그의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수업시간 그가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화가 났던 수학 선생은 “이 문제를 풀어라. 틀리면 매를 맞을 준비를 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는 어려운 문제를 이미 암산으로 다 풀어버려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무렵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중·고등학생 작품 공모전’이 열렸다. 이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그는 이를 계기로 더욱 그림에 몰두하게 됐다.

한국전쟁이 휴전하자 홍종명은 제주를 떠났다. 스승과 함께 자신도 서울로 가겠다고 다짐한 그는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고, 1954년 서울예고에 입학한다. 당시 아버지는 일본에 있었기 때문이다.

1년 뒤 그는 18세에 불과한 고등학생 신분으로 제주시 소재 ‘남궁다방’에서 개인전을 열고 작품 15점을 내걸었다. 이 전시회는 당시 제주에서는 최초로 학생이 개최한 개인전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濟州新報’는 1955년 7월 6일자에서 “양질감 있는 강군의 솜씨가 관객들의 놀라움을 샀다”고 보도하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濟州新報’ 1955년 7월 6일자에 게재된 강태석 화백 관련 보도.

제주 출신 중에서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1957년)한 것도 그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가던 그는 1961년 군 복무를 마친 뒤 제1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누드 A’라는 작품으로 입선을 했다.

하지만 이때의 입상으로 그는 미술계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를 가르치던 모 교수가 당시 심사위원 이었는데, 출품 기일이 지났음에도 그에게 작품을 내라고 한 뒤 입선작으로 선발했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미술계와 거리감을 갖게된 그는 그 길로 고향 제주로 내려와 제주여자고등학교에서 1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는 이후 어떤 공모전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미술을 하는 사람이 소수인데다 작품도 잘 팔리지 않았다. 어려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1965년 옛 나사로병원 맞은편에 ‘피노키오’라는 토산품점을 열어 제주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르방을 팔았지만, 1년 정도 운영한 뒤 폐업하고 만다.

이즈음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민주공화당을 창당했고, 상징을 황소로 정했다. 그는 직접 돌을 황소 모양으로 깎아 박 대통령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고은 시인 등 문인들과도 자주 어울렸고, 평소 산을 좋아해 제주산악회 창립 멤버로도 활동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그는 제주산악회 깃발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박수진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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