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무덤
조조의 무덤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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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남철기자] 어린 시절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를 읽으며 유비, 관우, 장비의 ‘의리’에 감탄하고 조조의 ‘간사’함에 분노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조의 다른 점을 보게 됐고 전란의 시기를 헤치고 위(魏)나라의 건국의 기틀을 닦은 조조의 리더십과 재능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조는‘난세의 간웅(奸雄)’‘치세(治世)의 능신(能臣)’이라는 극단적 평가를 받는다.

이 조조의 무덤이 최근 공식 확인됐다.

중국 허난성문화재고고연구원은 지난달 26일 허난성 안양현 안펑(安豊)향 시가오쉐(西高穴)촌에 위치한 동한(東漢)시대 무덤군에서 감국지 위나라의 시조인 조조(曹操 155∼220)와 조조 부인 2명의 무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무덤은 2009년 중국 허난성 안양현 시가오쉐촌(西高穴村)의 가마터 일꾼들이 벽돌을 만들려고 진흙을 파다가 발견했으며 허난성 문화재고고연구원은 2009년에 이어 2016년, 2017년 세 차례 발굴결과를 종합한 후 지난달 “이 고분은 조조의 무덤”이라고 확정, 발표했다.

발굴팀은 고릉 주변의 분토 기반, 천도통로, 동부 및 남부 건축물 등을 포함한 주요 구조를 밝혀내고 조조와 맏아들 조앙(曹昻)의 모친 류(劉)씨, 조비(曹丕), 조식(曹植)의 모친 변(卞)씨가 매장돼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묘원 안에서는 모두 남성 1명, 여성 2명 등 3구의 유해가 발견됐는데 이 가운데 남성 유해는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60세 전후의 나이에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무덤 구조와 소장품, 역사 기록 등을 분석해 이 남성이 조조라고 결론을 내렸다.

조조는 원(元)·명(明) 교체기 나관중(羅貫中ㆍ1330?~1400)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통해 한ㆍ중ㆍ일 3국에 널리 알려졌다.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233~297)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를 바탕으로 구전 이야기를 엮어 만든 소설이다.

후한을 이어 촉한(蜀漢)을 세운 유비(劉備), 오(吳)나라의 대제(大帝)로 등극한 손권(孫權)과 함께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었던 조조는 위나라 건국의 기틀을 닦았다. 400년 왕조가 가진 정통성의 힘을 두려워 해 살아 생전, ‘황제의 길’로 나가지 않았지만 아들 조비(曹丕)에 이르러 한(漢)니리를 뒤엎고 새 왕조를 여는 기반을 다져준 것이다.

조조는 타고난 여러 재능이 눈 부셨다. 전란(戰亂)의 시기에 걸맞게 무략(武略)·병략(兵略)적 재능이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고래로 전해오는 유명 병법서(兵法書)들의 부족함을 보완해 주석을 달거나 직접 병서(그의 호(號)를 딴 맹덕신서·孟德新書)를 지어낼 정도였다.

병가(兵家)에 필요한 전략·전술 이론에 밝았고 그 응용이 뛰어났다.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인물을 발탁해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조직과 집단의 능력을 100% 발휘하게 만드는 통찰력과 안목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조조의 최후의 장면이다. “후세 사람들이 내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하라. 내 무덤을 사람들이 파헤칠까 염려되는구나.”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이었지만 조조는 죽은 뒤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했다.

중국 산시성 시안을 방문했을 때 진시황릉을 들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거대한 능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조조의 무덤이야기와 틀린 게 없었다. 막강 권력을 휘두르던 진시황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으며 사후에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을 파헤질까봐 여러가지 비밀스런 장치를 해놨다는 안내인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했던 기억이 조조무덤 발견 기사를 보면서 떠올랐다.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지사 출마 예비후보들과 도의원 및 교육의원 출마 예비후보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떠돌고 있고 일부는 표면으로 돌출되면서 각 진영 간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그 가운데 기자의 눈을 끈 것은 후보들의 전과기록을 공개하는 한 SNS 계정이었다. 물론 선거전이 공식화되고 후보들의 이력이 공개되지만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나기도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라는 말처럼 한 개인이 살아온 과정은 결코 숨길 수 없디는 것을 최근 절실히 느끼고 있다. 특히 누군가를 대표하겠다는 선량들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 안 돼 보궐선거를 치러야하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 것이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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