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미투 운동, 권력의 뿌리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불붙은 미투 운동, 권력의 뿌리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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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제주한라대 간호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바다 위 빙산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모든 현상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해석할 때 오류가 생긴다. 우리사회의 성폭력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남성 우월적 사고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의 성별 권력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식적 조직의 상하관계가 아니어도 남녀관계자체가 권력관계로 작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분위기였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물리적 힘이 강자이지만, 인간의 세계는 지위나 돈 그리고 성이 권력이 된다.

권력은 양면성을 지닌다. 권력에 대한 실험을 실시한 미국 버클리 대학의 심리학교수인 대처 캘트너는 “권력의 쟁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감’과 ‘사회지능‘이 권력의 쟁취 후에는 제일 먼저 사라진다”며 이를 권력의 역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권력의 폭력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고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는 불온한 정부에서 시작해서 중소기업에 갑질을 일삼는 대기업들과 직장 안에서 신으로 군림하는 상사들, 그리고 가족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가장까지 모두가 권력의 폭력적 모습이다.

약자가 권력 앞에서 고개 숙이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권력의 폭력성을 악화시킨다. 권력자는 유무형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약자는 침묵의 고통까지 떠안아야 한다. 심지어는 갑질을 당한 약자가 또 다른 약자에게 똑같은 폭력을 가하는 것이 폭력적 환경에 편승하는 성공의 방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도미노 현상은 그간 권력적 폭력이 우리사회에 무의식적 기제로 작동 된 결과다. 성폭력 또한 단순히 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폭력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 ‘미투’ 운동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투운동은 법조계부터 대학가에 이르기까지 두루 번지고 있으며 전 국민이 성폭력의 심각성을 공감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성폭력예방을 위한 방안 모색도 활발하게 이어지는 모양새다. 교육부도 참여율이 저조한 대학생 성폭력예방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올해부터 대학별 성폭력 예방교육 실적을 공개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예방교육 실적이 좋다고 성폭력이 줄어들까?

얼마 전 도내 모 대학의 일이다. 학생들을 위한 ‘성폭력·가정폭력 예방교육’은 정규 수업까지 일방적으로 휴강하는 독단적인 행정편의주의로 실시됐다. 해당 교수들에게는 휴강 통지와 보강원 제출을 독촉하는 문자 메시지가 전부였고 학생들에게는 의사와 관계없이 출석체크라는 강력한 매가 동원됐다.

이쯤 되면 교육의 본연의 목적보다 예방교육실적 쌓기에만 군침을 흘린 것이 아닐까 싶다. 성폭력 예방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기본적 인권임을 인식시키고 피해와 가해를 동시에 예방하기 위함이다.

즉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예방교육의 핵심이다. 정규수업의 일방적 취소는 학생의 기본적 권리인 정규수업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면서 폭력에 대한 저항이 일어날 리 만무하다.

폭력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뜨거웠던 미투운동도 소강국면에 접어든 모양새다. 한때 ‘갑질’에 대한 사회적 비난으로 도배되던 뉴스가 시간이 흐르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듯이 권력이 휩쓸고 간 을들의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 모처럼의 미투운동이 소리 없이 사라져버릴까 염려스럽다. 그러나 ‘미투’로 인해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의 소중한 용기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불씨를 던져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미투’에 대한 논쟁이 ‘성’을 넘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권력남용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국민의 기본권이 존중되는 사회, 폭력 없는 평화로운 사회로 진일보할 수 있도록 보다 생산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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