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州 4·3 (Massacre)
濟州 4·3 (Massacre)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08 1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상호.시인/전 중등교장/칼럼니스트

[제주일보] “모른다. 몰라야 산다.”

선친(先親)의 대답이었다. 제주4·3에 대하여 여쭈어 볼 때마다 한사코 모른다, 아는 게 없다하셨다. 몰라야 산다는 말씀은 또 무슨 뜻인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끝내 그러시면서, ‘입조심 하라’ 덧붙이셨다.

 

다섯 형제들 중 둘째이셨던 아버지, 4·3 지나니 혼자 남으셨다. 친자(親慈 ; 필자의 祖父母)뿐만 아니라 조카들까지 모두 잃게 된 4·3을 어찌 모르시겠는가. 여덟 아이 낳아 키우시며, 남몰래 타는 속마음을 담배로 하염없이 삭히시다가 마침내 폐가 나빠져 먼저 간 가족들과 함께하신 아버지…, 어찌하여 아무 말씀을 아니 하셨을까?

 

모든 역사적 사건은 이름이 있다.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은 전쟁이다. 난(亂)이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는 국소적(局所的)이다. 제주 4·3은 제주도에 일어난 난(亂)이었다. 요(擾)보다 아주 크다. 미국 보스턴대학살, 일본이 저지른 난징대학살처럼 무자양란(戊子洋亂)의 대학살이다.

 

전쟁의 실제는 전투(combat)이다. 전투는 무기를 든 사람(combatant)들끼리의 싸움이다. 비무장인(non-combatant)은 양민(civilian)이다. 어찌 이들에게 총질을 할 수 있는가!?

 

고등학교 영어교과서 독본에 실렸던 어느 포수에 대한 이야기. 눈이 수북이 내린 아침 숲속, 사슴사냥을 걷고 있었다. 이때 어떤 수사슴 한 마리가 겁도 없이 그를 보며 가까이 왔다. 도망쳐야 쏠 텐데, 이게 사냥의 법도(法道)인데, 외려 마치 마중이라도 나온 듯이 점점 더 가까이 왔다. 서너 발짝 앞까지 다가서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천천히 제 갈 길을 갔다. 서로 헤어졌는데, 조금 지나서 총소리가 들렸다. 다른 포수가 그 사슴을 쏘았던 것이다. 순간, ‘아! 짐승보다도 못한 총잡이!’ 어떤 깨달음이 그의 영혼을 쏘아댔다. 그일 이후 평생, 그는 총을 아주 내려놓았다.

 

군인을 예전에는 무사(武士)라 했었다. 무사가 되려면 활을 잘 쏘아야 한다. 활(弓)로 멀리 떨어져 있는 벌레(虫)의 굽은 팔꿈치(厶)를 명중할 정도이면 그 무사는 강(强)한 것이고, 활대에 깃털이 퍼석퍼석 날 정도이어서 휘는 힘조차 없으면 약(弱)한 것이다. 또한 무(武)는 올바르게(正) 주살(弋)을 쏘아야 한다. 그게 무(武=正+弋)이다. 아무리 십발십중(十發十中)이어도, 살(矢)하나가 그 대상을 잘못 고르면 무도(武道)에 어긋난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살생유택(殺生有擇)은 무(武)의 기본정신이다. 이것 없이 총(銃) 쥐이고 제복(制服) 입히면 미친 망나니로 날뛴다.

 

사람(亻)이 소(牛)처럼 변별(辨別)이 없으면, 그 저지른 짓이 건(件=亻+牛)이 된다. 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우리가 죽였단 말인가?’라고 지릅뜬 눈(瞯)을 하는 이가 있다. 이것은 지랄(癎)이다. 영혼이 이미 흐트러져 있어서이다. 아! 갑자기 선친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모른다. 몰라야 산다. 말조심해라.’

 

발굴되는 탄피는 총의 종류를 알려준다. 그 총(銃)을 쥐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88세의 노인이 총을 쥐고 있었는가? 여섯 살 아이가 총을 들고 있었는가? 필자는 이제 고희(古稀), 전가(轉嫁)하려 탓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느름 속으로 서로 품기자는 것이다.

 

현상(現狀)은 용인(容認)의 길잡이.

3만 비석, 모인 이름 이제는 받아

역사라는 호적에 올려져야 할 일;

(Massacre) 괄호 풀어 濟州영혼에

‘濟州 4·3 대학살’로 새길 일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