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공론화 결정을 주목한다
영리병원 공론화 결정을 주목한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1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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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제주일보] 초봄의 찬 기운을 뚫고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봄꽃들의 자태가 무척이나 곱다. 봄은 새로움과 같아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며칠 전 그 설렘만큼이나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현재 논란이 계속되는 국내 1호 외국인 영리병원 허가 여부를 공론조사 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자본으로 추진 중인 국내 1호 외국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원 여부를 제주도민의 공론에 부쳐본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번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공론화한 경험을 되살려 제주에서도 숙의(熟議)민주주의를 실현해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제주특별법에 설립 근거를 둔 외국인 영리병원 문제는 원전만큼이나 허용 찬반 논란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회적 갈등사안이었다. 원전 5, 6기 공론화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공론화 과정을 밟게 된 것도 이러한 사안의 중대성 때문일 것이다.

정책 결정에 있어 그 절차적 정당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정책은 아무리 결과가 좋다 하더라도 끝끝내 흠집을 지울 수 없다. 일부에서는 시간 낭비가 아니냐며, 또는 투자유치가 줄어들거나 대외적 신인도가 낮아질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부작용보다는 공론화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모든 과정을 제주도민이 지켜보고 결론에 승복하는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을 제주도민이 전 국민에게 제공하게 된다는 점에서 볼 때 원 지사의 결정은 획기적인 것으로 규정할 만도 하다.

그런 점에서 혹 다소의 부작용이 발생할 여지가 있더라도 이는 절차적 정당성 면에서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공론화가 본격화되면 상반된 의견을 조정하고, 수년간 지속되어온 소모적 논란도 끝내게 될 것이다. 제주공동체의 공익을 함께 만들어가는 소중한 체험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다.

제안하자면 영리병원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공론 설계이다. 외국인 영리병원 사업승인 기관인 보건복지부를 비롯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녹지그룹, 시민단체, 보건의료단체, 도민사회 전반의 의견을 최대한 신속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를 위한 시민참여단은 471명으로 구성된 바 있다. 80대 고령 어르신부터 20대 청년까지 참여했다. 2박 3일간의 합숙토론을 포함해 33일간에 걸쳐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타인의 입장을 경청하는 숙의 과정이 이어졌다. 숙의는 마침내 지혜롭고 현명한 답을 제공한 것이다.

제주도는 앞으로 공론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신고리 원전의 사례를 참고해 여론조사와 주민참여 철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도는 무엇보다도 충분한 정보의 제공을 통해 공론화 추진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 지사도 이러한 점을 감안해 충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과 정보 제공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번 숙의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고 전 국민이 공감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며, 이 결론에 모두가 승복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써낸다면 최고의 자치역량을 스스로 검증해내는 것이 된다. 제주도의 자치역량이 한층 높아지고 민주주의와 협치의 선도 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대형 갈등 과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제주도 역시 대형 갈등과제로 인해 지금도 시름을 앓고 있다. 앞으로 대형 갈등과제는 더욱 빈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갈등이 최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악도 아니다. 갈등이 잘 마무리되고 건설적으로 대안이 제시되면 더욱 탄탄한 사회구조를 만들어내는 디딤돌 역할을 하게 된다.

국가 차원의 공론화 성공사례에 이어, 제주도가 지역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론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지방분권 개헌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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