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공존…제주인의 숨결을 느끼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제주인의 숨결을 느끼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1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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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18코스(제주원도심-조천올레)-원도심-김만덕객주터(1.6㎞)
복원된 김만덕 객주.

[제주일보] # 오현단

중앙로 18코스 출발점에서 나와 동문재래시장 입구로 통하는 횡단보도를 거쳐 남문사거리에 이르기 전에 골목길로 접어들면 곧 오현단(五賢壇)이다. 복원된 제주성지 아래쪽에 자리한 도기념물 제1호 오현단은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귤림서원(橘林書院)이 훼철된 후, 1892년 그곳에 배향되었던 오현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제단이다.

귤림서원은 1578년에 제주판관 조인후가 기묘사화로 1520년 제주에 유배돼 사사된 김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적거지에 사묘를 세운데서 출발해, 1660년엔 제주목사 이괴가 장수당을 건립했고, 1667년에는 제주판관 최진남이 ‘귤림서원’이라 헌액했다. 오현은 충암(冲菴) 김정(金淨)을 비롯,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동계(桐溪) 정온(鄭蘊),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 등 유배되었거나 목사, 안무사로 다녀간 분들이다.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조두석(俎豆石)을 중심으로 옆에 ‘증주벽립(曾朱壁立)’이라는 마애명과 오래된 비들이 근래에 세운 오현비, 시비들과 한데 어우러졌다. 이외 중요 건물로는 동쪽에 고득종(高得宗)을 모신 사당 향현사(鄕賢祠), 아래쪽에 학사 장수당(藏修堂)이 있다. 지금은 이곳 다섯 현인의 공적보다는 이 터전이 길러낸 인재들이 제주를 빛내고 있음이 자랑이다.

 

복원시킨 제주성 일부의 모습.

# 복원된 제주성지

오현단을 나와 남쪽을 보면 말끔히 단장된 모습의 제주성을 볼 수 있다. 오현단을 감싸고 남아있던 남동쪽 성의 일부를 복원한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의 규모가 둘레 4394자, 높이 11자로 기록돼 있으나 여러 차례 증축과 퇴축을 거친 후의 둘레는 6120자, 높이 13자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제주목의 치소를 둘러쌓았던 성의 증개축이 많았던 것은 이 부근 산지천과 가락천의 범람으로 자주 허물어졌었기 때문이다.

길 건너 동산에 성과 누각을 말끔히 복원해 놓았는데, 올라가 보면 ‘제이각(制夷閣)’이라는 현판이 달렸다. 성의 제일 높은 곳이어서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데, 1599년(선조 32) 제주목사 성윤문(成允文)이 왜적의 침입에 방어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제주목도성지도’에는 ‘청풍대(淸風臺)’로 되어 있는 것이 평화 시에는 선비들이 풍광을 즐겼던 것 같다.

 

동문재래시장.

# 동문재래시장

올레길은 해방이후 오랫동안 제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동문재래시장을 거치게 되어있다. 10번 게이트로 들어가 식당가를 지나면, 해산물을 파는 가게와 의류 도․소매점, 음식점, 토산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섰다. 특히 맛 나는 먹거리가 많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 저녁 같은 때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동문재래시장은 이번에 국비와 지방비 등 10억 원을 투입해 본격적인 야시장으로 탈바꿈한다. 오는 30일 개장식까지 시범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기로 하면서 지난 7일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는데, 야시장 개장은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다. 고객센터 아케이트에 판매대 32개를 제작해 운영자가 직접 감귤새우튀김, 흑돼지오겹말이, 우도땅콩 초코스낵, 함박스테이크, 이색오메기떡, 제주반반김밥 등을 제공한다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 산지천을 지나며

옛 동문교 횡단보도가 있는 곳으로 나와 보니, 해병탑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어지는 산지천 광장…. 힘들여 다리난간을 들어 올리는 일곱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우여곡절 끝에 깨끗하게 단장된 산지천의 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행착오(試行錯誤)’란 사자성어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산지천은 관음사 주변에서 발원해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거쳐 건입동에서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흐르는 하천이다. 과거에는 자주 범람해 지역 주민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나 맘껏 물을 쓸 수 있는 인기 있는 하천이었다. 하구에서 낚시하는 장면은 ‘산포조어(山浦釣魚)’라 해 영주십경의 하나였다. 하지만 1966년 10월에 동문교에서 건입동 용진교 사이에 길이 474m, 너비 21~36m를 복개해 주상복합지구로 이용되다가 많은 부작용이 생기자, 1996년 3월부터 2002년 6월까지 6년여 동안 사업비 365억 원을 들여 정비함으로써 생태 하천으로 거듭났다.

 

# 김만덕 객주터

산지천의 깨끗한 물과 곳곳에 새로 놓은 홍예다리를 바라보며 걷다가 용진교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건너면 ‘은혜의 빛’이라는 김만덕 기념관이 눈길을 끈다. 나눔과 베풂을 몸소 실천해 이 땅의 대표적 의인의 된 김만덕의 삶과 그 정신을 기리고 널리 전파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은 1층 나눔 문화관, 2층 나눔 실천관과 명상관, 3층 상설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그곳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면 ‘김만덕 객주’를 복원해놓았다. ‘객주터’라는 역사적 실체를 재현함으로써 이의 계승발전과 문화관광 자원화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거상 김만덕의 나눔과 봉사의 실천정신을 통해 사회경제적 책임과 윤리의 의미를 관광객과 후세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부지 2146㎡에 초가 8동을 지어 2015년에 개방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35억 원을 들여 사업에 착수, 7년 만에 완공한 이 시설은 세련된 면은 있지만 고증이 조금 부족하다는 평이고, 원래 목적한 나눔과 봉사의 실천정신을 발현시키는 공간으로의 의미는 사라지고, 전통주막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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