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영광’
지워지는 ‘영광’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3.1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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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우리속담에 ‘십 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십 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로, 부귀영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을 더 나아가 살펴보면 세상 이치의 기본이 되는 원리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요즘 이 말을 실감하는 곳이 제주시 연동 옛 바오젠 거리다.

이 일대는 한 때 중국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제주관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 사드배치가 이뤄지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때문에 이 일대 상가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이 곳 건물주와 세입자간 임대료 상승에 따른 분쟁이 잇따랐고 이는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바오젠 거리로 ‘호시절’을 누리던 제주시 연동은 제주 최대의 숙박시설을 가진 지역이다. 또 제주공항과도 가깝고 유흥가도 많은 곳이다. 자연스럽게 중국인을 비롯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불과 3~4년전 일로, 최소 10년간은 이 같은 호시절이 이어질 것으로 여겨졌는데 지금의 상황은 정 반대다. 올 들어 한·중 양국이 비록 사드배치이전 수준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관계회복이 이뤄졌는데도 이곳은 봄이 아니다.

지금 제주관광의 축소판이다.

#바오젠 옛 명성 퇴색

사드 배치로 촉발된 한·중 관계의 냉각기는 제주 속의 작은 중국이라 일컬어졌던 이곳 명칭까지 바꾸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올해 제주시 연동주민센터는 공모를 통해 이 일대 거리 이름을 ‘누웨모루’로 지었다.

신제주의 지형이 마치 누에고치가 꿈틀대는 모습과 같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 명칭은 많은 인재와 부자가 나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결국 바오젠 거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누웨모루로 명칭 변경은 다양한 패턴의 관광객과 도민들이 찾을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거리로 조성하고 제주관광 1번지, 지역경제를 새롭게 창출하는 거리로 거듭나겠다는 취지에 따랐다.

그런데 예전의 활기찬 모습이 지금은 안 보인다. 주말 저녁 한창 쇼핑객들로 붐빌 시간인데도 거리는 한산하다. 거리 곳곳에 폐점한 상점들과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들로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과거에 비해 활력이 떨어졌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가 주요인이지만, 그 속을 들어가 보면 이게 전부가 아니다. 누웨모루가 과연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췄는지 조차 의문이다. 그 상점이 그 상점이고, 그 메뉴가 그 메뉴다. 거리명칭을 빼곤 변한 게 별로 없다.

#제주 관광의 축소판

다 아는 무선통신장비를 만드는 노키아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회사다. 1871년 설립된 이 회사는 1998년 미국의 모토로라를 누르고 세계 1위 휴대폰 생산기업이 됐다. 한 때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핀란드 수출물량의 20%,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5%에 해당 될 정도로 엄청난 공룡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결국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당하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노키아 몰락의 이유에 대해선 학자들마다 이론이 있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것은 현재의 성공방정식에 취해 세상의 변화에 소홀하게 대응했다는 점이다.

지금 누웨모루가 이 대목에서 떠오른다. 제주 관광의 현재 모습을 빼닮은 모양새 때문이기도 하다.

관광패턴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관광숙박시설 또한 제주 전역으로 반경을 늘렸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제주 전역에 널려있다. 전국적 유명세를 탄 제주시중앙지하상가를 비롯해 칠성로, 동문수산시장. 서귀포올레매일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침체가 순간적이고 중국단체 관광이 재개되면 모든 게 풀린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누웨모루’를 아는 관광객이 과연 몇이나 되고, 꼭 찾아야 할 곳인지, 스스로 되묻고 그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노키아의 좌절이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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