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풍경
사람이라는 풍경
  • 제주일보
  • 승인 2016.01.2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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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시인 / 문학박사

지난 19일 프랑스의 문호,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2016)가 타계했다. 그의 서적 ‘사랑의 야찬’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에 관한 전설’은 내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이다.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몇 년 전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펼쳐 든다.

바그다드의 한 칼리프가 자기의 궁전 접빈실을 장식하려고 동방의 중국인 화공과 서방의 그리스인 화공 한 사람씩을 부른다. 작업이 끝나면 품평한 후 이긴 사람에게 큰 상을 수여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칼리프는 그들에게 3개월의 기한을 주고 작품 제작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양쪽 벽 가운데 장막을 치도록 한다. 3개월 후, 칼리프와 조정의 신료들이 접빈실로 모였다. 그들은 먼저 중국인 화공이 맡은 접빈실 벽 쪽을 향해 섰다. 중국인 화공이 그린 벽화는 꿈속에서 볼 것 같은 꽃과 나무, 작은 호수 위로 우아한 홍예다리들, 낙원의 풍광이었다. 그림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그리스인 화공의 작품을 보기도 전에 이 그림의 주인을 승자로 판정하려고 했다. 그러자 칼리프는 장막을 걷게 한다. 군중들이 반대편 벽으로 돌아서는 동시에 경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바닥에서 천정에 이르는 거대한 거울이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거울에는 중국인이 그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까지 그대로 비쳤다. 거울에 비친 그림은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중국인 화공의 정원에는 사람의 자취가 없는 그림이었지만, 그리스인 화공의 정원에는 수를 놓은 조복, 깃털 장식의 모자, 황금 장신구, 정교하게 세공된 무구를 걸친 신료들의 웅장하고 화려한 손짓 발짓이 다 들어있었다. 만장일치로 그리스인 화공을 경연의 승자로 판정한다.

위 이야기에서 보여주듯이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도 사람이 함께하지 않으면 텅 빈 그림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3일만 계속 보면 질리게 마련이다. 나 홀로 여행을 떠나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람을 피해서 떠난 여행의 끝에서 돌아올 때 내심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감금의 형태 중에서 가장 가혹한 형태가 독방 수감인 것만 봐도 그렇다. 사람과의 차단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고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그렇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정은 늘 그렇지만도 않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늘 부대끼고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인간 비린내가 진동할 때 사람들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래서 사람을 떠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앞에 당도했다 치자, 그러나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면 그 집은 금방 텅 빈 폐가로 변해 버릴 것이다. 그림이든 집이든 사람이 함께해야 비로소 온기와 생기가 돈다. 그렇다면 자연 자체의 풍경은 온전한 풍경이라고 부를 수가 없겠다. 사람이 개입해야 풍경은 살아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도 만들어졌을까. 사람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어도 왁자지껄 화제가 생기고 시시비비도 생기나니 이 세상에 사람만한 풍경도 없다(?)고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문학이라는 거울에 비쳐진 사람의 모습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위의 이야기에서처럼 거울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 본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느낀다. 사람이 함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학은 천태만상의 사람이라는 풍경을 통과하며 다양한 빛을 발한다. 풍경의 끝은 매력을 발산 하지만, 문학의 끝은 끝없는 마력을 파생시킨다. 실로 문학의 마력은 가상의 공간을 구축하고 현실보다 이상화된 인간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학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한 권의 시집, 한 권의 소설, 한 편의 영화를 보다가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거짓말에 기분 좋게 속을 줄 아는, 사람 냄새나는 풍경 아니겠는가.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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