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수형인 ‘억울한 옥살이’ 있어선 안 돼
4·3 수형인 ‘억울한 옥살이’ 있어선 안 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2.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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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제주 4·3 사건 당시 계엄령 아래서 이뤄진 군사재판을 통해 억울하게 수감됐던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청구와 관련, 법원이 재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그제(5일)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1948년과 1949년 제주에서 이뤄진 군사재판 수형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에 대한 첫 심문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날 “70년이 지나면서 현재 발견된 자료는 수형인명부 밖에는 없는 실정으로 일부 학자들은 사후 조작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어 판결이 실제 있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수형사실이 있다고 해서 사법처분에 의한 판결인지, 사법의 외관을 쓴 행정처분인지도 모호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달 19일 심문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양근방씨(86) 등 4·3 수형 피해자 18명은 지난해 4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003년 제주 4·3진상보고서 채택이후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과 병행해 제주 4·3특별법 개정 등의 과정을 통해 희생자와 유족들이 속속 결정됐다. 현재까지 4·3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은 1만4231명, 유족은 5만9225명에 이른다. 제주 4·3사건 발발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 군사재판을 통해 처벌(처형)됐다. 이번 재심을 청구한 이들 18명은 당시 군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아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들이다. 재심(再審)은 확정판결에서의 부당한 사실인정으로부터 피해자(피고인)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판결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되는 현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불복의 신청을 인정해 그 판결을 취소하고 새로이 판결을 하는 것이 정의에 합치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 재판부 입장에서 보면 70년 전에 발생했던 당시 상황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어렵다. 이는 곧 재심재개 여부와 직결된다. 따라서 재판부 또한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현대사에서 4·3이 갖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4·3을 주목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희생이 국가기구에 의해 자행됐다는 점이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사건에 대해 ‘국가권력의 잘못’을 인정했다. 나아가 제주 4·3당시 군사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한 국가범죄’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이들 18명은 결과적으로 제주 4·3이 낳은 희생자다. 따라서 이들의 재심청구는 당시의 법적용이 잘못됐다는 ‘종국적 실체판결’을 이끌어 내는 출발점이다. 이들을 평생 옭아맸던 억울한 누명을 씻어내고 불명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제주 4·3 유족 및 희생자뿐만 아니라 이 땅의 선량한 사람 모두의 보편적 바람이다. 재판부의 전향적 판단을 기대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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