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戊戌), '황금 개' 대신 누렁이
무술(戊戌), '황금 개' 대신 누렁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1.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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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설날까지는 아직 한 달하고 보름 정도가 남았지만, 연말부터 ‘황금 개띠’라는 말이 돌고 있다. 제주말로는 ‘살’이라고 하는 정유년 붉은 닭띠 아이들이 설날까지는 계속 태어날 것인데도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황금 개띠’라는 말이 왠지 귀에 거슬린다.

무(戊)는 천간(天干), 곧 하늘의 시간 가운데 다섯 번째다. 음양(陰陽)으로는 양(陽), 오행(五行)으로는 토(土)에 해당한다. 계절로는 간절기, 방위로는 중앙(中央), 색깔로는 황색을 뜻한다. 그러니 육십갑자 가운데 35번째인 무술(戊戌)을 굳이 ‘색깔과 띠’의 조합으로 표기하면 ‘누런 개띠’라고 해야 옳다. 11번째 지지(地支)인 술(戌)도 음양오행으로는 ‘토’이므로, 무술년은 천간과 지지가 모두 ‘토’다.

새해에 오행 이야기를 꺼냈으니, 내친 김에 좀 더 해보련다. 세상의 모든 것을 낮과 밤, 남과 여, 선과 악 등 두 가지로 분류한 것이 ‘음양’이다. 이것을 다시 다섯 개로 분류하면 ‘오행’이 된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등 오행은 ‘토’를 가운데 두고, 음과 양으로 대비될 수 있는 사물을 두 개씩 배치하여 그 분류의 대표 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처음에는 해당 분류에 사물을 집어넣을 수 있는 이유, 곧 ‘성질’만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인물인 추연(鄒衍)에 이르러 이 다섯 가지가 사실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行]’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이 당시 정치권에 받아들여져 체계화된 것이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다.

오덕종 시설에 따르면 역사는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이 상생하거나 상극하는 과정을 통해서 변화 발전해간다. 상생하는 과정이란 오행이 생성되는 순방향이다. 목은 토를 낳고, 토는 금을 낳고, 금은 수를 낳고, 수는 목을 낳는다. 이렇게 해서 이것이 저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상생의 한 바퀴가 돌아간다.

이에 비해서 상극하는 과정이란 오행이 투쟁하는 역방향이다. 목은 토를 이기고, 토는 수를 이기고, 수는 화를 이기고, 화는 목을 이긴다. 이렇게 해서 이것이 저것을 반대하고 이기는 상극의 한 바퀴가 돌아간다. 오행의 상생과 상극 이론은 세계와 인간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상생과 상극은 숙명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두 가지 변수다.

본래 오덕(五德)은 동아시아 고대사회의 정치 프레임이었다. 여기에 따르면, ‘수의 성질을 가진 왕조 뒤에는 어떤 왕조가 올까?’ 하는 물음에는 ‘순방향으로 전개되면 목의 성질을 가진 왕조, 역방향으로 전개되면 토의 성질을 가진 왕조’라는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왕조를 지키려고 하는 자는 물론, 왕조를 계승하고자 하는 자, 왕조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오덕종시설에 따랐다. 날짜를 택하고, 옷을 입고, 나가는 방향을 정하는 그 모든 것을 오행설과 상생상극설에 따랐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세태에 대해서 맹자는 공손추 하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때[天時]는 땅의 이로움[地利]만 못하고, 땅의 이로움이라는 것도 사람의 화합[人和]만 못하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그 해의 상징이 무엇인지, 그리고 운수를 살펴보는 데에는 겸허함이 전제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이 변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든 나쁘든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는 그렇기 때문에 오만함이 아니라 성실함의 발로다.

맹자가 천시보다는 지리를, 지리보다는 인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말로 하면 타고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구축해나가는지가 중요하고, 그보다도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누렁이[黃狗]’를 ‘황금 개’라고 부르는 것은 대수롭다. 겸허함보다는 우리의 욕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의예지신 가운데 토(土)에 해당하는 것은 신(信)이다. 사람과 더불어 신의를 지키는 누렁이가 상징인 무술년에는 인화(人和)와 신(信)이 성취될 수 있기를 바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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