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갖고 있어야 할 것
내가 갖고 있어야 할 것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2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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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제주문인협회장

[제주일보] 톨스토이는 노년에 가출을 했다. 예전엔 그 행동이 이해가 안 됐다. 그저 평론가들이 하는 얘기인가 했다.

요즘에 와서 노년의 톨스토이의 심경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잃어버릴 걸 완전히 버리고 싶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떠나기 10일 전 그는 야스나야 폴랴냐를 떠났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의 여행을 고독과 고요함 속에서 보내고자 했다.

일기장에는 평범한 묘지에 안장하고 기념비를 세우지 말며 무덤 앞에서는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뜻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존경스럽다. 비길 바는 아니지만 나는 노년임에도 손에 쥐고 못 놓는 게 많다. 주위시선, 얄팍한 경제, 체면 그것을 아직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심지어는 그런 걸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낸다. 양손으로 쥐었던 사냥감을 놓아주길 거부하는 밀렵꾼 같은 자신을 발견한다.

그럴 땐 이상하게도 전에 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 게 부끄럽다고 느껴지니 나이가 든 탓인 것 같다.

예전처럼 많은 물건이 필요가 없어졌다. 던지지 못한 수많은 자료, 책들, 옷, 가방, 구두, 다 버린다 해도 그다지 아깝지 않다.

버린다는 건 무엇을 버리는 것인가. 산처럼 쌓아놓은 쓰레기 더미 앞에서 우울해진다. 왜? 물건이 쌓이는 거지? 그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낡은 걸 버리는 길도 있지만 새로운 걸 막는 행위도 있는 게 아닐까.

버릴 때는 가치판단을 하면 안 된다. 최소한 필요한 것, 그걸 결심하면 성공이다.

정리하며 살고 싶다. 손에 쥐었던 쓸데없는 것들, 버리며 가고 싶다.

존 르 카레의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읽고 있노라니 의미 있는 얘기가 나와 인상적이었다.

‘이 시대에 뒤떨어져도 자신의 시대에 충실하면 된다’는 글귀였다.

지금 이 시대에 맞추려고 고심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집, 좋은 차, 호화로운 삶, 편리한 생활, 그러려면 힘이 든다.

‘자신의 시대’에 충실한 삶은 어떤 것이었나 생각해 본다.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일 게다.

아름다운 정서는 문화와 예술을 만든다.

정서는 들에 피는 제비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들에 피는 제비꽃. 그 가련함에 애정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일.

그것이 적어도 내 자신의 시대엔 필요하다.

누구라도 추하게 늙고 괴롭게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톨스토이처럼 가출해서 마무리 할 용기도 없다.

불필요한 것 모두 버리고 내가 갖고 있어야 할 것 하나, 정서. 아직도 나는 글을 좀 더 써야하기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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