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바깥, 그리고 지역주의
안과 바깥, 그리고 지역주의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12.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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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동서고금을 통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특이한 예외가 있겠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사이가 나쁘다. 다만,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우는 모습일 것이다. 그 가장 극단적인 예는 인도와 일본이라고 한다.

사회인류학자 나카네 지에의 책 ‘일본사회의 인간관계’(양연혜 역, 소화)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도에서는 싸움이 벌어질 경우 집안이 떠나갈 듯이 다툰다. 그래서 온 동네 주민들이 금방 사태를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동네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서로 편을 갈라 ‘시어머니vs며느리’ 패싸움이 벌어진다. 즉 집안이라는 ‘장(場·field)’을 떠나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자격’이 더 중시된다.

일본의 경우는 정반대다. 아무리 고부(姑婦) 갈등이 심각하더라도 집안 싸움이 바깥으로 비화되는 법이 없다. 어떤 경우에서든 장(場), 즉 집안이 우선시된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형제, 자매보다 자기 며느리를 중요시한다. 형제, 자매는 바깥이고, 며느리는 안이라는 인식이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1992) 때 일이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전에서 1, 2위를 다툰 선수는 미국의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일본의 이토 미도리였다. 둘 다 일본인 핏줄이고 생김새도 모두 다 일본인이다.

그런데도 당시 일본인들은 우승을 차지한 미국 대표 크리스티 야마구치를 차갑게 외면했다. 이미 일본이라는 장을 떠났으니 철저히 타인일 뿐이라는 인식이었다. 나카네 지에는 이를 ‘안과 바깥의 문화’라고 했다.

일본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싸울지라도 바깥의 개입을 극도로 경계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에 시집 간 딸이 개입해 며느리와 싸우는 우리와 다르다.

크리스티 야마구치가 한국 핏줄이었으면 어땠을까. 한국인들은 한국계 미국인의 우승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지금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계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우리 언론이 보여주는 관심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인도처럼 장(場)이 아니라 자격을 중시한다. 여기서 자격은 물론 핏줄이다.

▲하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언제부터인가 장(場)이 우선이다.

현대정치사에서 어느 누구보다 장(場), 즉 지역주의의 혜택을 입은 정치인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호남은 김대중 대통령의 기반이었다. 그는 이 장(場)에다가 이념이라는 자격을 붙였다. 사실 호남이라는 장(場)이 진보의 이념과 동체를 이룬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호남은 한국 현대사에서 보수·우파 정치가 처음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1945년 건국 직후 호남지역은 한민당의 정치적 근거지였다. 한민당은 잘 알다시피 인촌 김성수 등 보수·우파 내지 지주 계급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호남이 진보 진영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영남, 특히 대구·경북이 보수·우파 세력의 근거지로 인식되는 것 만큼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이 같은 장(場)과 자격도 와해되는 듯한 조짐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과 대구 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바른정당의 통합 가능성이다.

양당이 오는 22~24일쯤 당 대 당 통합 선언을 하고, 내년 1월 중순쯤 찬반을 묻는 전당대회 개최 등 구체적 계획이 나돌면서 실현 가능성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양당 대표들이 지난 14일 부산에서 만나 통합 의지를 드러내자 ‘12월 통합 시나리오’가 정말 사실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이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양당 의원들이 참여하는 국민통합포럼 행사에 참석해 같은 목도리를 매고 함께 구호를 외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자, 한국정치도 장(場)에서 벗어나 자격으로 회귀하는가. 지역주의라는 장(場)과 진보라는 이념적 핏줄, 즉 ‘자격’을 함께 묶어 양수겸장으로 삼았던 ‘김대중 정치’의 유산도 점차 종언(終焉)을 향해 가는 듯하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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