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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아야 할 길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12.07

[제주일보=정흥남기자] 어느 가을 날. 한 사람이 숲 속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나 망설인다. 그러다 그 가운데 사람들이 적게 다닌 길을 선택했다. 그는 가지 않은 다른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뒀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회상했다.

미국의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詩)의 내용이다. 이 시의 원제는 ‘The Road not Taken’으로 가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 걸어 보지 못한 길 등으로 번역된다.

이 시는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가 연고지를 부천에서 제주로 옮기면서 회자되기도 했다. 2006년 2월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연고권 협약식에서 SK 구단주는 이 시를 인용, “두 갈래 길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당시 SK 구단주는 이 시를 인용해 프로축구 불모지 제주에서 맞게 될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제주도민들에게 내보였다. 제주유나이티드는 올해 리그 2위를 확정, 2년 연속 ACL(아시아축구연맹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에 진출했다. 올 한 해 제주사회를 신나게 만든 좋은 성적이다.

‘길’은 쓰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된다. 그런데 행정기관이 ‘길’을 말할 땐 대부분 예측 가능한 신뢰의 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요즘 특정 개발 사업 인·허가를 둘러싼 제주도의 행보가 보는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골프장 옆 대규모 숙박시설

블랙스톤 리조트와 중국 자본 신화련이 합작해 만든 신화련 금수산장 개발 주식회사. 이 회사는 한림읍 금악리 블랙스톤 골프장과 바로 맞닿은 곳 100만㎡ 가까운 부지에 호텔 및 휴양콘도 700여 실을 조성하는 복합리조트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업 지구에는 기존 블랙스톤 골프장 부지도 일부 포함됐으며 해당 골프장은 사업자의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

이 사업은 제주도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비록 조건부지만 통과한 것을 비롯해 관련 행정 절차를 속속 밟아가고 있다. 이대로 모든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 되면 골프장 바로 곁에 대규모 숙박 시설이 조성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문제는 이 사업이 제주도가 유지해 온 개발 가이드 라인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제주도는 그동안 줄곧 기존 골프장을 숙박 시설로 용도 변경하거나 골프장 주변 토지를 매입해 숙박 시설을 확대하는 개발 사업은 불허한다는 방침을 이어왔다.

따라서 이 사업은 사업 계획이 제주도에 제출되는 순간부터 논란이 일었고 현재 진행형이다. 불과 보름 전 제주도의회의 제주도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 사업에 대한 편법·꼼수 지적이 나왔다.

제주도는 문제될 게 없어 갈 길 가겠다고 기세등등하다.

#자기가 한 말은 지켜야

행정청의 행정 행위에는 여러 원칙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우선 순위에 드는 것 중 하나가 이른바 자기구속의 원칙이다. 엄밀하게는 관행이 성립된 경우 행정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편에선 자기가 한 말은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더 통용된다.

헌법재판소는 이 원칙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대법원 또한 특정 개인에게만 과도하게 초과하는 처분을 한 경우에는 재량권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행정기관의 대외적인 공표 또는 의견은 국민이나 다른 기관의 공무원으로 하여금 신뢰를 갖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 나아가 그 의견이 도정 최고 책임자의 방침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면 이에 행정청이 구속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토착 자본이 열악한 제주의 입장에서 볼 때 외부 자본을 통한 대규모 개발 사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긴박하고 나아가 꼭 필요한 사업이라도 이를 판단하는 정책 결정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 정서가 담겨 있어야 한다.

제주도가 가지 않아야 할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닌지, 제주도의 발걸음을 지켜보는 불편한 눈들이 너무 많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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