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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저울 혹은 우울변종태 시인 / 다층 편집주간
제주일보 | 승인 2017.12.03

[제주일보] 거울을 볼 때 우울하신가요, 저울을 볼 때 우울하신가요? 사뭇 모양이 다르고, 근본적인 용도도 다른 두 사물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르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당연히 거울은 사물을 비춰주는 기능을 하고, 저울은 사물의 무게를 측정해주는 구실을 하므로, 전혀 상관없는 사물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 추상적인 의미 기능을 덧붙이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 거울은 단지 외양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를 비춰주고, 저울은 무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를 측정한다고 하면 결국 거울과 저울의 기능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거울을 들이대고, 타인에게는 저울을 들이댑니다. 그러고 보면 개인용 주택이나 회사, 관공서 등 어느 곳을 가더라도 현관에서 맨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커다란 거울입니다. 왜 하필이면 거울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드나들면서 자신을 비춰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흔히들 거울이라고 하면 겉모습을 비춰보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그건 하수(下手)들의 이야기입니다.

거울은 결국 자신의 외모나 행동에 대한 판단의 기준일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함께 굴뚝 청소를 하러 들어갔던 두 소년이 하나는 얼굴에 검댕이가 묻고, 하나는 안 묻었는데 누가 얼굴을 먼저 씻는가 하는 물음에, 묻은 소년이라거나, 안 묻은 소년이 먼저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먼저’라는 말에 집착한 탓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일을 했는데, 누구는 깨끗하고 누구는 더러울 수가 없는 법 그래서 ‘둘 다 씻을 것이다’가 답이 됩니다. 물론 거울의 기능, 혹은 타인의 시선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언행은 자신의 거울에 비춰보면서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타인의 언행은 ‘저울’로 재려고 합니다.

자신의 과오는 가급적이면 두루뭉수리하게 지나가려 하고,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은 눈금 하나까지 세세히 들여다보려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어떻게든 남의 꼬투리를 캐내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즐기려는 고약한 취미가 인간의 본성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남의 말은 그럴싸한 양념을 곁들여 굉장히 엄격하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저울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각자의 기준과 형편에 따라 다른 이를 재려다 보니, 사회 곳곳에 잡음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형평(衡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형(衡)은 저울대라는 뜻이고 평은 수평을 뜻하는 말이니, 수평이 맞지 않는 저울대로 다른 이의 언행을 재다보니 당연히 공정성의 시비가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시쳇말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극히 자기모순적인 논리가 이 사회에 팽배해 있습니다.

내 편의 잘못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네 편은 없는 잘못도 만들어내는 그릇된 정치 문화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 일반에게까지 암암리에 퍼져 있는 까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흔히들 ‘문화는 이류, 경제는 삼류, 정치는 팔류’라고 하는 자조적인 농담을 듣곤 합니다. 자신을 자신이 아닌, 남의 저울대 위에 올려놓고 형평을 이룬 상태에서 쟀을 때도 과연 남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의 거울에 비춰 양심에 가책이 없는 투명함을 지니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차가워진 날씨만큼이나 물의 온도도 차갑습니다. 이렇게 차다보니 가을 물에는 미생물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서 그 어느 계절의 물보다 맑디맑습니다.

그래서 ‘가을물 같이 맑다’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맑은 물을 명경지수(明鏡止水)라 하여 거울처럼 맑고, 고요한 물처럼 잔잔한 마음을 일컫기도 합니다. 자신에게는 저울을 들이대고, 남에게는 거울을 들이댈 일인 듯합니다. 저물어가는 가을, 모든 우울을 가라앉히고 거울을 보든, 저울을 보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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