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으로 가는 길
'웰다잉'으로 가는 길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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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식. 제주한라대 응급구조과 교수 / 논설위원

[제주일보] 한동안 ‘웰빙(well-being)’이란 단어가 봇물처럼 쏟아졌었다.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지향하는 인간의 소망 때문이다. 요즘 들어 웰빙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웰다잉(well-dying)’이다. 웰빙이 삶을 잘 영위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웰다잉은 아름다운 죽음, 존엄한 죽음과 같이 죽음의 질을 높이면서 삶을 잘 마무리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늘 고민하면서도 죽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산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웰빙의 완성은 웰다잉으로 마무리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일명 웰다잉법 또는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 10월부터 3개월간의 시범 사업에 들어갔다. 내년 2월부터는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한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품위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법에 의하면 환자 스스로 선택이 가능하다면 직접 심폐소생술,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적용 등의 연명 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을 요구할 수 있으며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라면 가족 2인이 환자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다. 그리고 가족 전원이 합의할 경우에도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다만 진통제 투여나 물, 산소, 영양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지난해 8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한 여성의 사연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캘리포니아에 살던 화가 배치 데이비스는 치명적인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3년째 투병 중이었다.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이 점차 파괴되면서 결국 호흡근 마비로 사망하게 되는 불치병이다.

2015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오랜 논란 끝에 존엄사를 허용하는 의료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이 통과되자마자 데이비스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즐기기로 결심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재탄생 기념파티’를 연다는 초대장을 보낸다. 그녀는 초대장에서 ‘지구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참가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 규칙을 알렸다.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파티지만 ‘내 앞에서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말아달라’는 것.

30여 명의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틀 동안 계속된 파티는 피자와 칵테일로 시작해서 음악과 댄스파티, 영화 감상으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끼던 물건을 친구들에게 모두 나누어준 다음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투여받은 후 편안하게 41세의 생을 마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사에서 ‘캘리포니아주 개정 의료안전법에 따라 데이비스의 사인은 자살이 아니라 루게릭병으로 기록됐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이라면 데이비스의 경우는 의사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안락사이자 적극적인 웰다잉이라고 할 수 있다.

점차 많은 나라에서 존엄사 또는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법률 제정도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논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인간 생명 존중 차원에서 존엄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고, 이를 허용할 경우 빈곤층 환자가 치료비 부담 때문에 자살로 내몰리거나 더 나아가 줄기세포, 체세포 복제 등 생명 윤리의 영역까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악용하는 경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웰다잉을 위해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안정적인 시행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죽음, 존엄한 죽음을 위한 웰다잉 문화의 정착과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 그동안 학문적, 철학적 관점에서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다뤄지던 ‘웰다잉 교육’을 좀 더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교육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말기 환자나 고령자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학생들에게까지 존엄한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자살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장기기증 등 생명의 고귀한 나눔으로까지 이어지도록 사회적 관심을 높여 나갔으면 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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