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민주주의’가 희망이다
‘숙의 민주주의’가 희망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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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우리는 과거 민주주의에 절망하면서 살아왔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탈원전 공론화라는 ‘숙의 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deliberation democracy)’가 실험되면서 한국만큼의 민주주의 국가도 드물다는 생각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숙의 민주주의’는 ‘심의 민주주의(審議民主主義·iscursive democracy)’라고도 불린다.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한다는 숙의(熟議)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형식이다. 합의적(consensus) 의사결정과 다수결 원리의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법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요건은 단순한 투표를 넘어선 실제적인 숙의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이론과 다르다.

‘숙의 민주주의’는 서구사회뿐만 아니라 중국, 몽골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좀 더 정치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시민의 직접참여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팽배한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을 계기로 ‘숙의 민주주의’는 확산될 전망이다.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대다수 민중의 신뢰를 잃고 있다. 무슨 때문일까?

선거로 뽑힌 정치가들이 자기들의 개인적·정파적·계급적 이익만 챙길 뿐, 민중의 삶의 요구에는 거의 혹은 전혀 응답하지 않는 과두 금권지배 체제로 변질·타락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다양한 형태의 ‘숙의 민주주의’이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평범한 시민들이 ‘미니 퍼블릭(mini public)’을 구성하여 거기서 국가나 지역공동체의 중대사를 숙고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는 방법이다.

우리사회에서 ‘숙의 민주주의’를 통한 공론화가 절실한 사안은 무엇이 있을까? 지금 논의를 시작한 선거제도개혁이다. 여야의 이해충돌이나 기득권 챙기기 때문에 정치권 차원에서 제대로 논의되기 어려운 선거제도개혁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탈원전 공론화로 자신감을 얻고 부동산 보유세(保有稅) 인상에도 ‘숙의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다. 보유세 인상 등 증세는 국민 다수의 지지가 바탕이 돼야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증세(增稅)의 표적은 다주택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도에서도 어떠한 정책결정 방향을 결정할 때 도민과 함께 만드는 ‘숙의 민주주의’의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 단순한 찬․반 양론을 벗어나, 감춰진 갈등을 드러내고 침묵했던 목소리가 터져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해 당사자들끼리 서로 무엇이 다른지, 무엇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깊이 토론해 합의의 단서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2공항 부지 문제는 제주지역 최대 갈등 현안이다. 실제로 성산읍 5개 마을은 반대대책위를 구성, 절차적 타당성과 천연동굴 분포, 오름 절취, 기상 문제 등 부실 용역 의혹을 제기하며 원점 재검토를 요구해 왔다. 성산읍대책위 간부가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이어가자 제2공항 문제는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다.

처음부터 제주도가 도민들의 참여와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이견(異見)들을 좁히고 설득을 중요시하는 민주적 절차를 밟았으면 어땠을까? 다수결로 결정하기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으면 어땠을까? 그 본질은 바로 ‘사회적 선택(social choice)’을 위한 공론이다.

‘숙의 민주주의’는 ‘평등한 참여’와 ‘충분한 숙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최소한 전체 국민의 모습을 간직한 축소판으로서 미니 퍼블릭을 선정한다면 보다 ‘평등한 참여’가 가능하다. 역동적인 토론과 상호작용을 통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면 숙의는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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