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로 풀어보는 행정의 존재 이유
퀴즈로 풀어보는 행정의 존재 이유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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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호. 제주연구원 연구위원/논설위원

[제주일보] 퀴즈 하나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주민 A, B, C가 살고 있는 섬이 있다. 주민 A, B, C는 지역 발전을 위해 각각 100원씩을 각출하여 항구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항구 건설 입지로는 ‘가’ 지역과 ‘나’ 지역이 검토되고 있는데, 항구 건설 입지에 따른 주민 A, B, C의 이익 및 순이익은 다음과 같다고 가정하자.

- ‘가’ 지역에 항구 건설 시 주민 A, B, C는 각각 150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에 따라 주민 A, B, C의 순이익은 건설비용 100원을 뺀 50원이 된다.

- ‘나’ 지역에 항구 건설 시 주민 A는 400원, 주민 B, C는 50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에 따라 주민 A의 순이익은 건설비용 100원을 뺀 300원이 되며 주민 B, C는 건설비용 100원으로 인해 50원의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

어느 지역에 항구를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먼저 답부터 얘기하면 ‘나’ 지역에 항구를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 여기에는 주민 A가, 자신이 얻게 되는 순이익 300원 중 200원을 주민 B, C에게 100원씩 나눠줘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주민 B, C는 (‘가’ 지역에 항구 건설 시 얻는 순이익과 같은) 50원의 이익을 얻게 되며, 주민 A는 (‘가’ 지역 항구 건설 시 얻는 순이익인) 50원 보다 50원 더 많은 100원의 이익을 얻게 됨으로써 전체 주민 복리가 증대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서 봐야할 것은 주민 B, C는 항구 건설 입지가 ‘가’ 지역에서 ‘나’ 지역으로 바뀌더라도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주민 B, C는 ‘나’ 지역 항구 건설 입지 대안에 대해서 동의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퀴즈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날 경우 항구가 어느 지역에 입지하게 될지 예상해보자. 정책 결정 방법으로 투표 또는 여론조사 등을 중요시 하는 최근의 트렌드를 감안할 때 아마 ‘가’ 지역에 항구가 건설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왜냐하면 항구 건설 입지에 대한 투표 시 주민 모두가 순이익이 발생하게 되는 ‘가’ 지역 대안에 대해서는 찬성 3표가 나오는 반면에, ‘나’ 지역 대안에 대해서는 주민 A만 순이익이 발생하므로 찬성 1표(주민 A), 반대 2표(주민 B, C)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투표를 통한 정책 결정으로 인해 주민 복리를 보다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투표 또는 여론조사 결과가 반드시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제주지역에서는 상당수의 정책적 사안들이 여론조사를 근거로 결정되고 있다. (‘가치’의 문제와 관련된 정치적 사안이 아닌)정책적 사안을 여론조사 등의 정치적 방법을 이용하여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다만, 행정이 추구하는 최우선 목표가 ‘주민 복리 증대’에 있다는 점, 그리고 여론조사에 의한 결정이 반드시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한 최적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론조사에 의존하여 정책 결정을 하는 행정 행태가 타당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퀴즈와 같은 상황에서 행정은 정책 결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

첫째, 정책 대안에 따른 주민 A, B, C의 비용과 이익을 분석하고, 이 결과에 근거하여 주민 복리를 보다 증대시킬 수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둘째, 주민 A가 얻는 순이익의 일부를 주민 B, C에게 나눠줄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셋째, 설계된 이익 배분 시스템을 토대로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 결정 모델을 일반화시켜 모든 정책적 사안에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책 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여론조사에 대한 행정 의존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행정의 역할은 점점 작아질 것이다.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중요한 행정의 역할이 여론조사 기관에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위 퀴즈를 통해 행정의 존재 이유를 되새겨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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