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일본 쓰쿠바연구학원(學園)도시를 시찰한 후 주변의 시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동 맛이 특별했다. 주인장은 “증조부께서 내려주신 것입니다”라며 한 액자를 가리켰다. 최고 품질의 우동을 만들어 가문의 명예를 지켜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는 대학을 마치고 귀향하여 부모의 우동가게를 이어 맡았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가업(家業)을 이어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다. 그 우동집도 증조부로부터 이어 왔으니 100년은 된 가게임에 틀림없다.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약 60㎞ 지점에 있는 쓰쿠바연구학원도시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녹아있는 ‘과학도시’다. 이곳은 300여 개에 이르는 정부와 민간 연구기관이 들어서 있는 중소도시다. 약 1만3000여 명의 연구원들이 과학일본임을 증명한다. 기초과학의 산실인 것이다. 일본이 과학분야에서만 노벨상 수상자를 22명이나 배출한 밑바닥에는 창조성을 살리는 자유로운 기업풍토가 조성됐기 때문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역에서 30분, 간디 국제공항으로부터는 50분 거리에 위치한 인도가 자랑하는 ‘그레이터노이다’(GREATER NOIDA)는 업종집중국제도시다. 승용차로 단지 내 도로를 30분이나 달렸다. 관계자는 이 거대한 산업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200여 마을을 철거했다고 했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곳에는 각종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IT분야의 강국, 인도의 과학기술은 ‘노이다’에서 인도 기온처럼 뜨겁게 상승한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와 전자 등 우수 대기업들이 노이다에서 기술한국을 내세워 12억 인도시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세계 21위 인도 공대생들이 한국기업을 선호한다는 설명을 듣고 흐뭇했다.
우리나라의 충남 대덕전문연구단지, 전원도시형 과학단지다. 1978년부터 선박, 화학, 통신기술, 자원개발 등 연구교육기관들이 입주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석학들을 초치했다. 연구원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각급 학교도 신설했다. 정부와 민간 연구소, 교육기관이 연계한 연구활동은 기초과학의 바탕 위에 과학한국을 빛내고 있다. 서울단지에는 원자력연구소와 과학원이, 구미전자단지에는 전자기술연구소가, 창원공업단지에는 기계금속·전기기기 등의 연구소가 들어섰다.
그런데 근간 국가경쟁력에서 한국은 11위에서 26위로 추락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 원인은 후진적 노동·금융·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국가경쟁력을 후퇴시켰다니 반성할 일이다.
국가경쟁력을 얘기하면서 일본인의 창조성, 인도인의 산수 19단과 최고 수준의 수학을 다시 꺼내본다.
세계적인 3대 투자가 짐 로저스가 무슨 일로 공무원 시험 준비의 대명사 노량진 공시촌(公試村)을 둘러봤는지 궁금하다.
이곳을 둘러본 그는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신흥 국가들과 경쟁할 수 있겠나”라고 쓴 소리를 하며 떠났다. 얼마 전 316명을 뽑는 공무원 9급 공채에 9만5000여 명이 응시해 301.9 대 1의 경쟁력을 기록했다. 공무원 9급·7급·5급 공채에 응시하면서 학원비와 용돈·월세 등 매달 62만원이 들어가고, 합격하는 데만 2년 2개월이 걸린다는 표본 조사가 나왔다.
필자는 다시 연고가 있는 그 ‘노량진’을 찾아갔다. 실비식당에는 공시생들로 만원이다. 기업에 취업하는 일은 어렵지만 공무원이 되면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에다 급여도 상승한다. 오늘도 내일도 공시생은 ‘노량진 주민’으로 살아간다.
공직 선배로서 할 말이 없다.
일부 청년들이 공무원을 고집하며 세월을 보내는 현실을 탓하지 말라. 이런 사회 분위기를 정부, 기업체, 연구기관 모두가 나서서 청년들에게 창조와 ‘도전정신’을 심어줄 묘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청년들의 도전정신이 없는 나라, 부끄러운 나라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