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도전하지 않는 나라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는 나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3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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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준. 재경대정향우회 고문/수필가·논설위원

[제주일보] 일본 쓰쿠바연구학원(學園)도시를 시찰한 후 주변의 시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동 맛이 특별했다. 주인장은 “증조부께서 내려주신 것입니다”라며 한 액자를 가리켰다. 최고 품질의 우동을 만들어 가문의 명예를 지켜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는 대학을 마치고 귀향하여 부모의 우동가게를 이어 맡았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가업(家業)을 이어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다. 그 우동집도 ​증조부로부터 이어 왔으니 100년은 된 가게임에 틀림없다.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약 60㎞ 지점에 있는 쓰쿠바연구학원도시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녹아있는 ‘과학도시’다. 이곳은 300여 개에 이르는 정부와 민간 연구기관이 들어서 있는 중소도시다. 약 1만3000여 명의 ​연구원들이 과학일본임을 증명한다. 기초과학의 산실인 것이다. 일본이 과학분야에서만 노벨상 수상자를 ​22명이나 배출한 밑바닥에는 창조성을 살리는 자유로운 기업풍토가 조성됐기 때문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역에서 30분, 간디 국제공항으로부터는 50분 거리에 위치한 인도가 자랑하는 ‘그레이터​노이다’(GREATER NOIDA)는 업종집중국제도시다. 승용차로 단지 내 도로를 30분이나 달렸다. 관계자는 이 거대한 ​산업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200여 마을을 철거했다고 했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곳에는 각종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IT분야의 강국, 인도의 과학기술은 ‘노이다’에서 인도 기온처럼 뜨겁게 상승한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와 전자 등 우수 대기업들이 노이다에서 기술한국을 내세워 12억 인도시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세계 21위 인도 공대생들이 한국기업을  선호한다는 설명을 듣고 흐뭇했다.

​우리나라의 충남 대덕전문연구단지, 전원도시형 과학단지다. 1978년부터 선박, 화학, 통신기술, ​자원개발 등 연구교육기관들이 입주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석학들을 초치했다. 연구원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각급 학교도 신설했다. 정부와 민간 연구소, 교육기관이 연계한 연구활동은 기초과학의 바탕 위에 ​과학한국을 빛내고 있다. 서울단지에는 원자력연구소와 과학원이, 구미전자단지에는 전자기술연구소가, ​창원공업단지에는 기계금속·전기기기 등의 연구소가 들어섰다.

​​그런데 근간 국가경쟁력에서 한국은 11위에서 26위로 추락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 원인은 후진적 노동·금융·​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국가경쟁력을 후퇴시켰다니 반성할 일이다.

국가경쟁력을 얘기하면서 일본인의 창조성, 인도인의 산수 19단과 최고 수준의 수학을 다시 꺼내본다.

​세계적인 3대 투자가 짐 로저스가 무슨 일로 공무원 시험 준비의 대명사 노량진 공시촌(公試村)을 둘러봤는지 궁금하다.

이곳을 둘러본 ​그는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신흥 국가들과 경쟁할 수 있겠나”라고 쓴 소리를 하며 떠났다. 얼마 전 316명을 뽑는 공무원 9급 공채에 9만5000여 명이 응시해 301.9 대 1의 경쟁력을 기록했다. 공무원 9급·7급·5급 공채에 응시하면서 ​학원비와 용돈·월세 등 매달 62만원이 들어가고, 합격하는 데만 2년 2개월이 걸린다는 표본 조사가 나왔다.

​​필자는 다시 연고가 있는 그 ‘노량진’을 찾아갔다. 실비식당에는 공시생들로 만원이다. 기업에 취업하는 일은 어렵지만 ​공무원이 되면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에다 급여도 상승한다. 오늘도 내일도 공시생은 ‘노량진 주민’으로 살아간다.

​공직 선배로서 할 말이 없다.

​일부 청년들이 공무원을 고집하며 세월을 보내는 현실을 탓하지 말라. 이런 사회 분위기를 정부, 기업체, 연구기관 모두가 나서서 ​청년들에게 창조와 ‘도전정신’을 심어줄 묘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청년들의 도전정신이 없는 나라, 부끄러운 나라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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