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문화가 관광용 박제가 되지 않도록
해녀문화가 관광용 박제가 되지 않도록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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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제주특별자치도가 올해부터 5년 동안 1223억원을 투자해 제주해녀문화를 대중화·세계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시행한다. 총 69개 사업이 진행되는 이번 ‘제2차 제주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 5개년 계획’은 예산의 규모가 클 뿐아니라 제주도와 정부 간 지속적인 공동사업 발굴 등 프로그램들이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다. 벌써부터 관련 학계나 단체, 도민들의 기대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런만치 이번 기본계획은 앞으로 지속적인 보완을 통해 수준 높은 사업들이 되도록 탄력적으로 운영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해녀 전당이라는 기념관 하나 더 짓고, 해녀 항일운동 기념사업이나 벌이고, 해녀문화를 글로벌화한다니 뭐 한다니 하며 말로 떠들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기본 목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우선 선사시대부터 생업으로 내려온 해녀문화가 지속가능하도록 제주해양환경을 잘 관리·보전하는 한편 어촌의 정주(定住) 환경을 개선해 살기 좋은 어촌을 만들어가는 데 목표를 둬야 할 것이다. 해녀는 척박한 땅과 바다를 일군 경제활동의 주역이었다. 밭일을 하다가도 물때가 되면 바다로 향했다. 제주 인근뿐 아니라 육지 근처까지 원정을 가거나 뱃일 등 바깥물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해녀는 아기 낳고 사흘이면 바다에 들어간다’는 말에는 이들의 억척스럽고 고단한 일상이 묻어있다. 해녀의 삶은 민중수탈의 역사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때는 귀한 해산물을 진상하라는 관리들의 폭정 탓에 섬을 떠나기까지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수탈 기구로 전락한 해녀조합의 폭리에 시달렸다. 1930년대 성산포 사건 등 ‘해녀항쟁’은 착취에 맞서 어민으로서 떨쳐 일어난 항일운동이었다. ‘배움없는 해녀 가는 곳마다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 가엾은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해녀들은 옥중에 갇혀 ‘해녀의 노래’를 지어 이렇게 불렀다.

한 때 2만명이 넘어섰던 해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4000여 명 정도다. 현직은 대부분 고령이고 대를 이어 물질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해녀들이 물위로 올라와 가쁜 숨비소리를 토해내던 테왁(뒤웅박)도 보기 힘들고, 해녀들의 전복을 따던 비창(무쇠로 만든 칼)도 얼마 뒤면 박물관 속에서나 보게 될 것이다. 해녀문화가 관광용 박제(剝製) 문화가 되지 않으려면 해녀들의 정주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첫째고 두번째는 해녀의 삶과 문화에 대한 학문적 평가가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세계화니 글로벌화니 할 것 없다. 가장 제주다운 것이 가장 국가적인 것이고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제주도는 열정을 가진 전문가와 도민, 해녀들과 협력해서 지속가능한 해녀의 삶과 지혜를 배우고 실천해낼 인프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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