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버스, 국회와 지방의회
'개발'과 버스, 국회와 지방의회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10.1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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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발.

이 말의 본래 의미는 묵(도토리 등의 앙금을 되게 쑤어 굳힌 음식)을 담는 사발(沙鉢)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이 뜻보다 사발에 담긴 묵처럼 형편없이 깨지고 뭉개진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일부에서는 묵을 담는 사발이 사발 중에 최하급이라서 ‘묵사발이 되다’라고 하면 창피와 모욕을 당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여튼 묵사발이라는 말은 정도가 다를 뿐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요즘은 때려서 눕힌다거나 아예 말을 못하게 박살 낼 때 ‘묵사발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지금 국회는 정부 각 부처를 상대로 국정감사를 진행 중이다. 지방정부의 의회인 제주도의회는 제주도를 상대로 행정사무감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 국감장에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행감장에선 제주도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정책이 의원들의 추궁과 질타에 묵사발이 됐다. JDC는 2002년 5월 제주를 국제자유도시로 조성하는 개발전담기구로 출범했다. 그런데 JDC는 해마다 국감 때면 맥을 못 춘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JDC 역할 미흡’ 질타

지난 16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여야 구분 없이 JDC를 질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제주도에 국제자유도시를 만든 것은 섬의 특수성을 활용하자는 취지인데, 지금 사업은 다른 시·도의 개발사업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 또한 “제주 난개발에 대한 우려로 인해 JDC가 추진하는 사업이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질타했다.

제주도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제주도의회 행정사무감사 초반 쟁점이 됐다. 지난 17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 행감에서 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제주도를 몰아세웠다. 바른정당 고정식 의원은 민간버스회사에 지나친 특혜를 줬다고 추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학 의원은 “이대로 간다면 내년도 예산심사 때 의회 동의를 얻기 쉽지 않다”고 경고했다.

제주발전연구원이 최근 명칭을 ‘제주연구원’으로 바꿨다. ‘발전’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전’이라는 단어를 떼냈다. JDC 또한 명칭 변경을 추진 중이다. ‘개발’에 대한 도민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기관 명칭에서 ‘개발’을 빼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름을 바꾼다고 조직이 당장 달라지지 않겠지만 변화하려는 자기발전의 몸부림이다.

JDC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토착자본이 미약한 제주상황에서 볼 때 제주 발전에 기여한 측면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민간업체 특혜시비

제주도의 버스운행체계 개편과 관련, 오정훈 제주도 교통항공국장은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어서 미흡하거나 부족한 점이 많다.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으면서 우려를 해소해나가겠다”고 답변했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제주의 입장에선 언젠간 꼭 해야 할 정책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차량이 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더는 방치해선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물류 운송뿐만 아니라 도민들의 이동권까지 훼손당하고 있다.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과 미세먼지는 제주의 청정환경 가치조차 끌어내렸다.

결국 대중교통 기능 강화가 대안이 됐다. 역대 제주도정은 대중교통 기능강화 필요성을 실감하고 시행을 검토했지만 경쟁업종의 반발과 시행초기 폭발적 민원에 지레 겁을 먹은 나머지 번번이 손사래를 내저었다. JDC 위상 재정립과 제주도 대중교통체제 개편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결코 풀지 못할 게 아니다. JDC와 제주도의 문제해결 능력도 있다. 고치면 되고 반드시 고쳐야 한다.

일면 나쁜 표현으로 사용되는 묵사발이 요즘은 한여름 먹고 싶은 음식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개발에 대한 불신과 업자에 대한 특혜시비로 촉발된 JDC와 제주도의 묵사발 감사판이 되레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제주가 지속가능한 성장의 미래로 나가는 진통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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