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유감
추석 유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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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조엽문학회 회장/시인

[제주일보] 이번 추석 연휴엔 10만이 넘는 인파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제주도에도 내국 관광객이 많았다. 추석 차례는 어찌하고 가을 나들인가. 관광 현지에서 조촐하게 차례를 지낸다는 말이 떠돈 지도 오래되어 그러려니 하지만 타지에서나마 제상을 받은 조상은 말이 없다.

해마다 벌초하는 후손에게나, 해마다 벌초하지 않는 후손에게도 조상은 공평하게 음덕을 주신다. 벌초하지 않았다고 벌을 주면 그건 나쁜 귀신이지 조상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벌초 때 어쩌다가 동참한 친척 중에는 비석에 기록된 친족 계보에 자기 가문만 이름이 빠졌다고 난리를 피운 조카도 있었다. 왜 빠졌을까? 비석을 세울 당시 공동기금을 내지 않아서 비문에 올리지 않아도 좋다는 언약을 받고 세운 비석인데도 그 직계의 후손은 마냥 섭섭했던 것이다.

다른 조상의 묘는 다 있는데 다른 가지와 연결고리가 되는 으뜸 조상 묘를 분실한 방상도 있다. 희한하게도 족보에도 기록이 없다. 임진왜란 때도 아닌데도 분실했으니 더욱 오리무중이다. 다른 형제 조상 묘가 다 있으니까 더더구나 분실할 이유가 없는데도 없으니 답답하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후손들과 그냥 없는 채로 지내자는 후손으로 친족회의가 시끄럽다. 왜 없는지 유추해야 한다. 묘를 잃어버려도 되는 큰 사건이 있어서 묵인으로 이어지다가 진실이나 사실이 깡그리 지워졌을수도 있다.

조상이 명당에 누워 있다가도 묘지 위로 도로가 나게 되어 보상을 받게 된 후손이 옮기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세상은 산자의 몫이다.

이름을 남기고 죽어서 백년이 넘도록 불린다 한들 산자의 필요에 의한 활용일 뿐이다. 그래서 죽음은 멀리 가는 것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설령 신을 위한 공력이 많아서 윤회의 덕을 입고 다시 사람으로 환생했다고 해도 전생을 알 수는 없다. 저승에 갔다 온 자가 사후세계를 발설하게 된다면 우주는 질서가 파괴되고 만다. 그래서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거나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도 이승의 인연일 뿐이다.

바야흐로 호주제 폐지. 아무 성씨나 원하면 쓰게 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 3년에 걸쳐 소상과 대상 담제를 지내고 나서 5대까지 제사로 모시던 관습이 축소되어 장례를 치루면서 한꺼번에 치루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작금이다.

그러다보니 산수 좋고 경치 좋은 명당을 찾던 후손들은 영혼이 사라진 육신은 육신일 뿐이라고 화장하고 평장으로 모시는 가문이 있는가 하면 수목장으로 유골을 뿌리고는 묘를 만들지 않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그래서 되도록 벌초를 줄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돈만 잘 벌면 잘 사는 처세술을 도출하기에 이른 집안이 많다. 단정하기엔 섣부른 생각이지만 그런 분위기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한가위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석만 같아라’라고 하지만 추석이 괴로운 사람들도 많음을 상기하자. 추석이라 혈연이 모이면 뜻밖의 분란이 일어나서 이혼하는 부부도 생기고, 추석이라서 유독 외로움이나 가난을 실감하여 객지에서 눈물을 삼키는 저소득층도 많으니 중추절이라고 단순명료하게 떠벌려서는 안 될 것이다.

벌초를 마치면 제물을 올리고 절만 하면 깔끔하게 소분이 끝난다. 그런데 세찬 비가 쏟아져서 봉분 앞에 있는 상석 주위만 풀을 베기가 어려워졌다. 모처럼 외국에서 날아온 조카들이 비를 맞고 재채기를 연거푸 하는 바람에 ‘형님, 우리 아이들이 오늘 제주도를 떠나서 미국으로 가야 하므로 제는 올리지 말고 그냥 갑시다’라고 했을 경우 아무리 미국 박사학위를 받은 조카들이라도 다 조상님의 음덕으로 성공했으므로 비를 조금 맞았다고 제를 안 지낸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의견이 대립되면 내년 벌초 때 동생은 대행 벌초 비용만 보내고 안 올 가능성이 많다.

아무튼 벌초나 추석명절은 조상에 대한 예로써 중요한 풍습인지 후손끼리 정을 돈돈히 하는 통과의례인지 뜻을 헤아려볼 일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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