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에게서 배운다
겨울, 나무에게서 배운다
  • 제주일보
  • 승인 2016.01.1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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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 / 다층 편집주간

나는 나무를 참 좋아한다. 살아 있는 나무든 죽은 나무든 나에게는 마음의 평화를 주는 매재(媒材)이기 때문이다. 씨앗이 흙에 묻혀 싹을 틔우고, 잎이 돋아나면서 줄기를 세우고 하늘을 향해 뻗치는 기운을 볼 때면 생명의 경이를 느낀다. 아무리 게으른 나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거나 저버리지 않는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낙엽으로 돌아가 휴면을 취하고는 또 다른 한 해를 준비한다.

죽은 나무라면 조금은 다르다. 잔가지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 다른 식물들의 거름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굵은 나무들은 장작이 되어 인간에게 겨울의 따스함을 주기도 하고, 건축 자재가 되어 비바람을 막아주기도 하며, 가구가 되어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의 편안함을 위한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다. 더워도, 추워도 불평하는 일 없으며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 대한 불만도 말하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

하지만 내가 나무를 좋아하는 진정한 이유는 이렇듯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는 이기적인 생각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계절별로 나무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은 나무가 얼마나 부지런한지를 알 것이다. 녹음이 무성한 여름을 지나서 낙엽이 곱게 물드는 가을 나뭇가지를 보면 어느 새 다음 해 꽃을 피울 꽃눈과 잎을 틔울 잎눈을 마련하고 있다. 적어도 두 계절을 앞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요즈음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을 보면, 두 계절은 고사하고, 두 달, 두 주, 아니 이틀 앞의 일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턱이 낮은 문을 지날 때에는 미리 머리를 숙이고 들어서면 될 터인데, 빳빳이 고개를 들고 들어가다가 문턱에 머리를 찍고 나서야 머리를 숙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나무에서 배울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나무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자기가 왜 키가 작으냐고, 꽃이 아름답지 않으냐고, 열매가 볼품이 없느냐고, 못 생겼느냐고 궁시렁거리는 일도 절대로 없다. 뿐만 아니라, 나무는 절대로 현실에 안주하는 법이 없이,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다. 아무리 잎이 아름답고 무성할지라도 때가 되면 전부 털어내고 새 잎으로 갈아치운다. 흔히 상록수는 잎갈이를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상록수는 봄철에 잎갈이를 하여 새 잎으로 자신을 새로이 단장한다. 그래서 끊임없는 자기 변화와 발전을 추구한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격이 엄청 급했다. 그러다보니 성격 탓으로 크고 작은 사고를 자주 치곤 했다. 아무래도 이 성격대로 살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20대 초반부터 취미로 분재를 시작했다. 내가 욕심을 부리고 급하게 몰아세운다고 나무가 내 욕심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기에, 나무는 나에게 기다림과 인내를 가르쳐 주었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약속을 어기지 않고, 내가 보살피는 만큼의 모습으로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렇게 하면서 차츰 나의 성격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나마 지금의 모습으로, 지금의 성격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방학을 맞아 초·중·고 학생들은 제각각 자기 나름의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 앞가림을 하고, 나무처럼 미리 새 학기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내 집의 아이들만 해도 이제 자랄 만큼 자랐다고 생각하는데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은 서투르기만 하다. 그러다보면 부모들 입장에서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방학이 끝날 날만을 기다린다는 주위의 푸념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 부모들께 이런 조언을 드리고 싶다. 습관적인 의무감으로 잔소리를 하지 말고, 주말을 이용해서 가까운 수목원엘 가서 나무들이 어떻게 겨울을 견디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시라고. 그리고 그 느낌을 자녀들과 나눠 본다면 뭔가 하나라도 느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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