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지키는 게 제주를 지키는 것"
"한라산을 지키는 게 제주를 지키는 것"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9.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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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출입기자 서재철, 30년의 회고
적설기 한라산 정상을 정복한 지체장애인들

[제주일보] 한라산을 중심으로 용암동굴, 성산일출봉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지도 올해로 10년이 됐다. 2007년 세계자연유산등재에 이어 2002년 생물권보존지역, 3년 뒤 2010년에는 세계지질공원 인증으로 제주도는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로 인해 제주섬은 세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신비스러운 자연의 보고(寶庫)가 됐다. 1966년 한라산이 천연보호구역으로, 1970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한라산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조사와 연구가 시작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식물 보고이자 용암동굴의 보고 등 그야말로 제주섬은 자연의 신비, 그 자체였다.

필자가 제주신문(현 제주일보) 기자로 처음 배정받은 출입처는 바로 한라산이다. 신문 기자를 그만둔 1997년까지 ‘한라산 출입기자’로 현장을 뛰었다. 당시 한라산은 철쭉제라는 큰 산악행사를 제외하고는 눈길을 끌 일이 많지 않은 출입처였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 처음으로 자연보호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학교와 직장 등 가는 곳마다 자연보호운동으로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꺾으면 자연파괴행위로 단속됐고, 한라산 나무 도채 등은 아주 큰 범법행위로 다스릴 정도였다.

필자는 한라산이 남한 최고봉이기도 하지만 ‘식물의 보고’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한라산을 지키는 것은 곧 제주도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생각에 매주 산을 오르내리며 한라산 자연에 관한 기사를 썼다.

왕관릉 동쪽 능선에서 발견된 구상나무 도채 현장

한라산 자연파괴 현장을 비롯한 희귀 수목 도채 현장을 찾아내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도민들 사이에선 한라산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더불어 파괴된 한라산 등반로 보수와 대피소를 비롯한 등반로 청소를 산악인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 같은 한라산보호운동이 서서히 일기 시작하면서 적극적 주민운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당시 자연보호운동은 구호에 그치는 운동이란 지적이 있었지만 한라산보호운동은 그렇지 않았다. 도내 일부 산악회원들은 등반로 입구에 ‘한라산에서 인간 송충이를 몰아내자’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본격적인 자연보호운동을 벌였다. 그 때 한라산 파괴 현장이나 또는 도채 현장을 취재해 오면 다음 날 사회면이나 1면의 톱기사가 될 정도로 회사에서도 한라산 자연보호에 적극적이었다. 정말 지칠 줄도 모르고 한라산을 안방 뒤지듯 잘도 헤매 다녔다.

당시 편집담당 부장이 편집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주 작은 것이라 해도 한라산 기사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한라산 보호는 도민의 뜻일 뿐 아니라 언론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자연보호운동에 앞장 선 산악단체

이런 말을 듣게 되자 한라산 취재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됐다. 매주 월요일만 되면 한라산 희귀 수목 도채 현장 기사가 나왔고 본지 기사를 다시 중앙 일간지에서 받아 대서특필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라산 자연보호는 우리 도민만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매주 터지는 한라산 자연파괴 현장 기사로 가장 곤욕을 치룬 곳은 제주도 자연보호담당부서다. 오죽 했으면 당시 모 국장이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청경들에게 “제주신문 서 기자의 한라산에서의 일거일동을 감시해 보고하라”고 할 정도였다. (이 말은 당시 청원경찰이 전해줬음)

언젠가 제주도 모 국장이 필자에게 “우리 직원들 조그마니 괴롭히라”고 말하자 “나는 누구를 괴롭히려고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고 한라산을 잘 보호해 후손에게 물려주는데 그 뜻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제안도 있었다. “한라산 기사를 안 쓰는 조건으로 한라산 꽃 관련 책을 제주도에서 만들어 주겠다”고. 괜한 말이겠거니 하고 정중히 사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 언젠가 제주도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이 어느 모임 장소에서 “5·16도로에 숲 터널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다 서 기자 덕분”이라며 필자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5·16도로 성판악을 지나면 자연숲으로 이뤄진 숲 터널이 있는데 이곳이 도로 확장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에 자연으로 이뤄진 유일한 숲 터널이 사라질 위기’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가 나가자 서울에서 자연보존협회 이영로, 홍순우 교수가 현장조사를 오는 등 난리가 났다. 조사단의 적극적인 반대로 다행히 도로 확장이 중지됐고 숲 터널은 보존될 수 있었다.

그 무렵 필자는 본지 문화면에 ‘한라산의 꽃’이란 자연 시리즈를 우리나라 신문에선 처음으로 연재했다. 자연생태 시리즈가 연재되자 독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컸고 이를 계기로 ‘제주의 곤충’, ‘제주의 새’와 ‘한라산 등반조난사’ 등 한라산에 관련된 자연생태 시리즈는 물론 등반 조난사까지 연재하면서 한라산의 모든 것을 신문지면을 빌려 소개했다. 필자는 이 같은 한라산 파괴현장 취재보도로 1979년 한국기자상 사진보도부문을 수상했고, 이후 서울언론인상, 송하언론상, 대한사진문화상 보도부문 등 크고 작은 보도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봉황새작전 중 한라산에 추락한 공군 수송기

1982년 한라산에서 군용기 한 대가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텔레타이프로 전해진 ‘제주 근해에서 훈련 중인 군용기 한 대 추락’이라는 간단한 기사를 통해 처음 사건이 알려졌다. 그런데 다음 날 이 군용기가 한라산에 추락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필자는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제 출입처입니다”라고 말하며 카메라를 챙겨 한라산을 올랐다. 이 때 취재했던 군용기 추락 사진은 몇 년이 지나서야 지면에 소개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처음으로 군용기 추락 현장 사진이 보도된 것이다.

30년의 한라산 출입기자 시절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일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후배 기자들은 한라산은 물론 제주의 환경파괴와 변화에 대한 기사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만날 때마다 싫은 소리를 하게 된다.

최근 무절제한 개발로 제주섬의 참모습이 사라지거나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무척 아쉬워하는 도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후배 기자들이 꼭 알아주길 바란다. 제주의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가 필요한 때다.

제주일보 창간 72주년 맞아 한라산 출입기자로 활동했던 기억들을 조금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한라산은 오늘도 무사하겠지.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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