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탐라’의 정체성 정립할 때 ‘제주’ 미래가 있다”
“잃어버린 ‘탐라’의 정체성 정립할 때 ‘제주’ 미래가 있다”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7.09.2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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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창간 72주년 특별 대담]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부산이 고향인 전 교수는 1949년 함경도 출신 아버지와 제주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와 동대학원을 졸업, 1982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정년퇴직해 명예교수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50년 가까이 인류학자로 연구를 해왔으며 특히 제주학센터 초대 운영위원장, 제주학회장을 지내는등 제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제주일보=변경혜 기자]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인류학)는 “제주의 장점 중 하나가 평등”이라며 “이는 물리적 숫자의 균분으로 해석해선 안 되며 제주도민 개개인의 여러 능력을 서로 인정해주는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일보 창간 72주년 ‘제주의 미래를 논하다’ 특별대담에 나선 전 교수는 제주방언인 ‘공쟁이를 걸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이같이 설명하며 잃어버린 ‘탐라’의 의미를 제대로 정립할 때 ‘제주’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학연구센터 초대 운영위원장을 맡는 등 제주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여왔다. 문화인류학적-인문학적 측면에서 제주의 가치와 배경에 대해 얘기해달라.

-섬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육지와 항상 대립관계에 있는 바다에 둘러싸여, 바다를 주 무대로 살아가는 것이 섬사람이다. 이걸 깜박 잊고 있는 것 같다. 제주 출신이라는 걸 먼저 표현하는 걸 꺼려한다. 자신감의 문제다. 중앙-지방, 지방 중에서도 섬이라는 이른 바 ‘신유교적 멘탈맵’이 있어왔다. 모든 가치의 중심은 중앙-육지였고 교과서와 통신, 미디어들에 의해 구축돼 왔다. 육지와 서울 중심의 표준어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자기 것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거다. 결국 정체성의 문제다. 이게 최대의 관건이라고 본다.

난 제주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제주의 제(濟)는 물 건널 제, 물 건너 있는 땅, 시맨틱스(semantics, 의미론)로 보면 정확히 식민지다. 조선 땅 지명 대부분이 중국에서 왔다. 그런데 중국 지명을 아무리 뒤져봐도 광주, 경주, 영동, 영남, 호남 다 있지만 제주는 없다. 역사적으로 몽고 이후 탐라총관부, 탐라(耽羅)가 복권됐다. 역설적으로 몽고에서 벗어난 후 다시 제주가 됐다. ‘탐라’와 ‘제주’, 이 명칭싸움이 엄청난 거다. 정체성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다.

섬의 말로 24시간 FM 라디오 방송을 했으면 한다. 오사카, 도쿄, 홋카이도, 사할린, 만주, 북한에 있는 제주 사람들 다 들을 수 있다. 오키나와 FM 사투리 방송이 있다. 미군과 오키나와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설립했다. 대표적인 예로 ‘제주해녀’라는 말은 식민성에 너무 찌든 말이다. 말(言)의 복원, 정말 중요하다.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본연의 가치와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도청이나 도의회에 제주를 중심에 둔 지도가 걸려있는지 묻고 싶다. 역시 정체성 얘기다. 제주를 둘러싼 바다가 동중국해다. 지금 국제화, 세계화 어쩌고 하는데, 정체성이 없는데 제대로 되겠는가? 큰 돈, 돈은 전부 다 서울로 가고 있다. 왜 이런 식의 개발을 하는지, 고함을 치면서 얘기도 했고 논문도 썼다. 낙수효과, 허상인 것 다 알지 않느냐.

▲원희룡 도정에서는 미래비전 핵심가치로 ‘청정’과 ‘공존’을 제시했다.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다. 실천을 하려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도교육청과 함께 초등-중등교과, 과외활동도 하고 주민도 조직하고 교육해야 한다. 자치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추상적이란 비판이 이어진다.

예를 들면 탐라섬에 건천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개인적인 가설인데 중산간지대 목장화 이후라고 본다. 물이 쭉쭉 빠지는 현무암 지질구조가 아니다. 에코스피어(Eco-sphere) 전체를 봐야 한다. 한림 명월천에는 내가 흐르는데 왜 한내에는 안 흐를까? 명월천은 암석권-수문권-생물권 이게 잘 어우러져 있다. 다른 데는 그런 숲이 없다.

‘숲이 언제 사라졌느냐’, 몽고가 들어와서 목장화하면서 다 사라졌다. 생태역사를 재구성해 봐야 한다. 물이 흐르면 생태가 복원된다. 지금 제주 내천에는 민물고기가 보고된 게 없다. 민물새우나 민물조개도 안보인다. 일본 야쿠시마-가고시마 남쪽, 오쿠도에는 해발 1890m 산이 있다. 급경사다. 거기에도 민물고기가 산다. 이 큰 섬에 민물고기 하나 없다는 건, 전 세계적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은 숲의 복원이다. 그래야 물이 흐르고 유기물과 영양분도 흘러간다.

제주해안 백화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원시림이 복원돼야 한다. 원 도정의 전기차 정책은 매우 바람직하다. 제주로 오는 비행기 대수를 제한하고 퀄리티 컨트롤하는 관광해야 한다. 뭐든 캐파(CAPA)라는 게 있다. 지금을 퀄리티 컨트롤 시기로 잘 활용해야 한다.

▲제주인들이 앞으로 지켜 나가야할 제주인 정신과 연구해야 할 제주학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탐라와 제주, 두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탐라를 강조했는데 제주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해야 한다. 예를 들면 4·3은 유배문학, 출륙금지령, 좀녀들이 출가하는 것과 연결짓듯 중산간 지대 목장화도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제주에선 말 연구한다면서 몽고만 간다. 몽고는 유목이고 제주는 한라산이 있기 때문에 이목이다. 겨울되면 산에서 말을 내려오게 하고 봄 되면 다시 올려보내는 모델은 바로 키르기스스탄이다. 몽고가 아니다. 말을 부리는 사람은 보통 남자다. 그렇다면 몽고 이후, 목장화 이후 가족-주거 형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어멍(여성)중심의 가족 형태로 완전히 바뀐 거다. 아버지가 목장으로 징발돼서 어머니 중심이 된 것이다. 숲-초지-생태의 변화가 결국 산업체계, 가족 형태를 완전히 바꾼거다. 내 가설은 안거리-밖거리 주거 형태도 목장화 이후 등장이라고 본다. 한반도는 오천년, 탐라는 만년 이상으로 보는데, 과거 중산간마을을 발굴해보면 확인할 수 있다. 담 하나에 집이 두 채-물론 경제단위는 2개지만-담으로 위장해서 징발을 덜 하도록 피하려고 했던 거 아닐까? 전 세계에 없는 주거 형태다.

▲쓰레기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 제주의 환경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해결법은 원희룡 지사가 탐라섬을 선언하고 ‘청정과 공존’으로 가는 거다. 지금이 찬스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한 지방분권을 얘기했다. 탐라정신을 우리 삶 속에 구현시키는거다. 그것밖에 답이 없다. 강력한 리더십, 문 대통령의 리더십보다 탐라에서 원 지사의 리더십이 더 강해야 한다. 강력한 분권을 바탕으로 공쟁이를 극복할 수 있다. 중앙정부에서도 ‘아, 독립 수준으로 가는구나’라고 할 만큼이어야 한다. 특별자치도 10년의 역사·정신적 배경이 있는 거다.

▲제주도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주의 장점 중 하나가 평등이다. 그런데 그 평등이란 것이 물리적 균분만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능력을 인정해주자는 의미다. ‘똑같이’를 입체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평등 추구는 좋지만, 누가 좀 나서면 ‘지가 뭔데’라는 분위기가 있다. 제주가 배출한 인물 많다. 하지만 제주도 가면 인정 못받는다. 왜, 공쟁이 때문이다. 제주라는 물리적 크기의 섬을 글로벌 소사이어티로, 제주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 능력있는 사람을 인정해서 키우고 영웅으로 만들어야한다. 설문대할망, 자청비, 만덕할망, 민란을 일으킨 이재수, 다 제주의 영웅이었다. 또 하나, 육지와 외국으로부터 밀려드는 각종 물리적·정신적 압력이 있다. 글로벌리즘이라는 그런 압력을 견뎌내야 하고 들어온 압력 자체가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걸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영웅의 역할이다. 그런 영웅을 어떻게 만드느냐, 공쟁이 안 걸면 만들어진다.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는…부산이 고향인 전 교수는 1949년 함경도 출신 아버지와 제주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와 동대학원을 졸업, 1982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정년퇴직해 명예교수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50년 가까이 인류학자로 연구를 해왔으며 특히 제주학센터 초대 운영위원장, 제주학회장을 지내는 등 제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서울=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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