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萬人(만인)이다
한 사람이 萬人(만인)이다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9.1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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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서양 속담에 ‘모든 사람의 친구는 어느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Everybody’s friend, nobody’s friend)’란 말이 있다. 비슷한 말로 ‘A friend to all is a friend to none’이라기도 한다.

문법이 맞았는지 모르지만 우리말로 ‘만인(萬人)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라는 의미다. 어찌 보면 논리의 모순인 듯한 이 말의 이면(裏面)에는 세상사 인간(人間)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굳이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곱씹지 않더라도 그 속에 숨은 뜻을 누구나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위의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부부·형제·자매 등도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어렵다. 그래서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가족 뿐이랴. 제사·명절·벌초를 같이 하는 가까운 친족, 초등학교 반창회 동창끼리에서도 그러하다. 특히 크든 작든 한 조직체의 지도자 계층에 속해 있다면 구성원 모두로부터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이상론일 뿐이다. 낮잠 자다 꾸는 헛 꿈이라는 얘기다. 그게 어느 정도인가 하는 강도(强度)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직 내 어디엔가는 비판과 견제, 불만과 질시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모두로부터 추앙받는 지도자, 즉 만인의 친구를 우리가 바란다면 그건 예수님이나 부처님같은 도지사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평소에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옆집 사람도 막상 이해관계가 얽히면 전혀 다른 면이 드러나는 일을 일상으로 보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란 몇 겹인지도 모를 수많은 얼굴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야 한다.

▲그제 중국 무한(武漢)에 갔다 왔는데- 역사를 전공한 필자가 생각나는 고사(古史) 한 토막. 중국 춘추시대에 임금에게 총애받고, 또 백성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사람이 있었다.

이른바 ‘만인의 친구’다. 중국사에 나타난 그 사람은 맹자(孟子)가 화해와 조화의 성품을 지닌 성인(성지화자·聖之和者)이라고 지명한 유하혜(柳下惠)를 말한다.

유하혜는 더럽고 악질 임금을 섬기는 신하였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하찮은 말단 벼슬을 받아도 임금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임금의 의사를 받들어 맡은 바 최선의 일을 묵묵히 다했다. 누구에게도 무슨 말을 들어도 웃고 조용히 일했다. 그는 절대 “노(no)”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나 그를 다 좋아했다.

요즘처럼 지역정치인과 공직자 그룹 등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하수상한 때에는 유하혜를 닮은 인화(人和)의 달인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유하혜 같은 인물은 현대적 잣대에서 보면 무소신 기회주의자, 회색분자로 비판받을 수 있다. 그가 가진 덕목의 이면에는 우유부단함을 포함한 무원칙 등의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맹자가 유하혜와 함께 꼽은 성인 백이(伯夷)는 어떤가. 그는 나라의 일이 온당치 않다는 이유로 벼슬을 팽개치고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먹다가 굶어 죽었다.

그는 싫어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한마디로 흑백(黑白)을 확고히 구분한 극단주의자였다.

하지만 맹자는 그를 청렴하고 성품이 곧은 성인(성지청자·聖之淸者)라고 했다. 맹자의 이런 풍부한 말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유하혜나 백이의 곁에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

사람이 사는 데는 유하혜의 삶도 있고 백이의 삶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가치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만인의 친구’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비판을 받더라도 사람이라면 진정한 한 사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지도자나 지역사회의 지도자나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없다면 절대로 무엇을 이룰 수 없다. 그 한 사람이 만인이니까. 그래서 오늘 아침 문득 ‘진정한 그 한 사람이 모두다’라는 생각이 든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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