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0주년.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
올레 10주년.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
  • 홍수영 기자
  • 승인 2017.09.06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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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홍수영 기자] 작은 돌담길을 따라, 때로는 길이 아닌 듯 검은 현무암 밭 위를, 어느 마을 옆 밭두렁 길을 지나다보면 파랑·주황 색깔로 표시된 작은 화살표와 만난다. 그 이정표를 따라 걷다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여행이 되고 그 모든 길들의 풍경은 추억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놀멍 쉬멍’ 제주 올레길을 걸은 사람이 지난 10년간 700만명을 넘었다.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걸으며 역사를 만들어온 제주올레가 어느덧 새로운 10년을 시작하고 있다.

 

#제주올레가 만든 길

2007년 9월 8일 성산일출봉과 제주의 푸른 동쪽 바다를 배경으로 1코스(시흥초~광치기 해수욕장)가 생겼다. 그 해에만 3개의 코스가 만들어졌고 5년에 걸쳐 21개의 정규코스가 완성됐다.

알파코스도 우도(1-1)와 가파도(10-1), 추자도(18-1)와 중산간(14-1, 7-1) 등 5개가 생겼다. 올레길의 총 길이는 425㎞에 이른다.

올레길이 하나씩 늘어 제주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탐방객, 즉 올레꾼도 점차 늘었다.

첫 해 3000여 명이던 올레꾼은 2013년 119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올레길 인기가 정점을 찍었던 2013년에는 4월 한 달에만 무려 13만여 명이 올레길을 걸었다.

한 해 평균 올레길 완주자는 600명, 지난 10년간 탐방객은 지난 8월말까지 770만여 명에 달한다.

올레가 생기기 전만 해도 제주 관광은 뻔했다. 용두암, 중문관광단지, 폭포 등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신비의 섬’ 제주는 3박4일이면 충분한 관광지였다.

하지만 올레길을 찾아 제주의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

올레꾼은 숨겨진 제주 속살의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제주는 오고 또 오고 싶은 ‘여행지’로 탈바꿈했다. ‘제주=올레’로 통할 정도였다.

올레 코스가 지나는 마을만 107개. 올레길 인근 슈퍼에서는 ‘올레빵’을 팔았고 마을 식당에서도 올레꾼들을 반가운 손님으로 맞았다.

올레가 바꾼 건 제주만이 아니었다.

전국에 걷기 열풍을 불어 아웃도어룩 유행에 한 몫을 했을 뿐더러 서울의 동네 뒷산까지 올레길을 따라 만든 ‘00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해외에도 수출되면서 일본과 몽골 등에 ‘자매의 길’을 만드는가 하면 캐나다·스위스 등 세계 트레일과 ‘우정의 길’을 맺기도 했다.

 

#넓어지는 제주올레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걸으며 지친 심신을 달랬던 경험을 살려 올레길을 만들었다. 처음 길라잡이를 할 이정표 리본과 페인트 값 정도만 생각하고 도전했다. 그랬던 올레가 이제는 한국 대표 브랜드가 돼 점차 그 길을 넓혀가고 있다.

㈔제주올레는 올레꾼들에게 길을 내어준 마을들을 위해 콘텐츠를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마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성산읍 신산리의 녹차 초콜릿·아이스크림, 표선면 세화3리의 허브 아로마 공병 캔들, 남원읍 의귀리의 말 테마 콘텐츠 ‘몰랑몰랑’ 등이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미 올레꾼들에게 새로운 즐길거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15년에는 복합문화공간 ‘간세라운지’가 처음으로 문을 열고 지난해에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개장하는 등 올레만의 공간을 만들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귀포시에 위치한 여행자센터는 올레꾼을 위해 오로지 ‘쉼’을 위한 숙소를 제공하는 동시에 각종 행사와 모임, 강연 등을 위한 공간 ‘삼다수홀’과 체험공방인 ‘간세공방’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제주올레걷기축제, ‘올레길 할망 숙소’ 등의 지역 비즈니스 협력 사업, 여행 콘텐츠 개발, 문화예술 프로젝트, 환경 보호 캠페인, 여행 문화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제주올레가 이어갈 길, 그리고 과제.

많은 사람이 걸으면 그 곳은 길이 되지만 걸음을 멈추고 잊혀져가는 길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제주올레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올레 탐방객은 총 43만319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4만7322명보다 1만4127명(3%) 줄었다. 5년 전 같은 기간 67만8660명보다는 24만5465명(36%) 줄었다.

월 평균 올레꾼 추이를 봐도 감소세는 뚜렷하다. 올해 7월까지 월 평균 올레꾼 수는 6만1885명으로, 2013년 9만9477명보다 38% 가량 발길이 뜸해졌다.

이 같은 통계는 올레지킴이를 통해 집계한 추정치에 불과하지만 대표 올레길 몇 곳만 둘러봐도 예전 열풍에 비해 적지 않게 떨어진 올레 인기도를 느낄 수 있다.

애월의 푸른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는 16코스만 해도 최근에는 올레꾼들의 발길이 드물어졌다. 대신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렌터카들과 해안변 일대에 즐비한 카페와 리조트, 펜션뿐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세대들은 올레길을 찾기보다는 도내 카페, 맛집을 찾아다니는 제주 여행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앞으로 올레가 가야할 길에 큰 과제로 남았다.

올레의 가장 큰 매력으로는 제주만의 청정 자연환경과 독특한 마을 풍경이 손꼽혔었다.

올레꾼들은 제주를 다녀가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감탄했고 이런 입소문은 올레 열풍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무분별한 개발과 마을 구석까지 카페, 펜션 등이 들어서며 제주다움을 잃고 상업화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올레꾼들의 아쉬움과 실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레길의 근본 가치이자 힐링의 원천이었던 오랫동안 머물며 천천히 ‘놀멍 쉬멍 걸으멍’ 돌아보고 싶은 제주를 다시 찾는 길, 올레길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고민은 지금부터다.

 

홍수영 기자  gwin1@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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