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9.0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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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지금 우리는 ‘영웅(英雄) 부재’ 사회에 살고 있다. 영웅을 찾아내기 보다는 ‘있는’ 영웅도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 그대로다. 국민에게 존경받는 ‘공인(公認) 영웅’이래야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정도일 뿐이다.

제주사회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물어보아도 영웅이라는 사람이 없다.

제주 역사에 인물이 이렇게도 없을까 자괴감이 들 정도다. 그러나 따져보면 제주에도 인물은 많다. 공(功)보다 과(過)를 잡아내려는 우리 사회가 영웅을 용납하지 않을 뿐이다.

일제 식민지시대에서 8·15, 4·3, 6·25, 4·19, 5·16 그리고 정권의 변천, 가치의 부침이 이런 영웅 부재의 사회를 만들어낸 것 같다. 자신들만이 옳다하는 극단주의자들은 근대화 주역을 친일파나 독재 지지자로, 민주화 운동의 공로자를 빨갱이로, 산업화 역군을 정경유착 치부자로 폄훼해왔으니까.

▲우리의 ‘영웅 문화’를 생각해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즉 영속성(永續性)과 정체성이다.

우선 영웅을 한때의 유행처럼 기린 뒤 오래지 않아 그의 이름도, 행적도 거의 모든 사람이 까맣게 잊고 마는 현상이 일반화해오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영웅들의 생애·정신 등은 언제 들어도 감동이 여전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는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례로 우리가 배웠던 인천상륙작전이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탑동 해변공연장에서는 제17회 제주해병대의 날 행사와 6·25 인천상륙작전 출정 67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16~18세 제주도 중학생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검을 들고 인천에 적전상륙을 했던 일을 기념하는 행사다.

어린 학생들이 피흘린 이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또 영웅적이다. 그러나 제주해병대의 영웅 신화와 맥아더 장군을 그 이름이나마 알고 있는 청소년이 얼마나 될까.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사람마다 견해나 시각이 다를 수 있음이 인정돼야 하고,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백발이 성성한 영웅들을 손가락질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제주해병대 같은 영웅들 뿐만 아니다. 차이가 인정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현대적 의미의 영웅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제주도가 지금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도 영웅으로 대접해줘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영웅이 어찌 이들뿐이랴. 특별한 배경 없이도 밤잠 안자고 쏟은 노력과 뛰어난 창의력 등으로 대단한 개인적 성취를 이루고 21세기 제주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성공 신화의 젊은이들이 많다. 이들도 영웅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다. 개인적 성취로 재산을 이룬 사람에 대해서는 일단 부도덕한 부류로 의심해 적개심을 보이는 경향마저 있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차이, 경쟁의 결과나 능력의 차이 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기는커녕 까닭없는 적개심(敵愾心)까지도 당연한 듯이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적개심은 적(敵)에 대한 우리 사회 일각의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누가 적이고, 무엇이 적이어야 하는가. 나라를 위협하는 집단, 법 질서나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범죄, 윤리 도덕의 타락말고는 우리가 공공의 적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 이른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은 서로 다른 역사관과 정치적 입장을 가졌을 뿐, 상대방이 적은 아니다.

우리는 국가적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기댈 만한 영웅이 없다고들 한탄한다. 그러나 영웅을 인정해주려 하기보다 영웅을 죽이려 드는 풍토를 개탄해야 한다.

영웅은 국가를 지탱하는 저력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부터라도 ‘크고 작은’ 영웅들을 길이 기억하자.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던 어린 소년병 영웅들도, 호야불 아래서 공부를 하고 7080 제주개발시대를 이끌었던 영웅들도 제주도의 진정한 영웅들이다.

우리는 새 영웅들을 평가하는데 인색하지 말고, 지난 날 제주사회를 이끌었던 영웅들도 폄척(貶斥)해서는 안 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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