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미학’
‘빈자의 미학’
  • 제주일보
  • 승인 2016.01.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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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2013년 3월 6일,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The Gallery of Casa Del Agua)’가 강제 철거되었다. 그것은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라는 뜻이다. 2010년 아메리카 프로퍼티상의 최고의 호텔건축 디자인상을 수상한 건축물이다.

승효상(承孝相)은 철거반대토론회에서 “반달리즘이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다. 카사 델 아구아는 제주도의 보물만이 아닌 세계적인 보물이 될 것”이라고 하며,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할 권한이 우리에겐 없다”고 말했지만, 행정은 끝내 ‘규정대로’를 고집했다.

반달리즘은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빈자의 미학’을 자신의 건축 철학으로 삼고, 집이 사람의 삶을 바꾼다고 믿는 승효상. 미술사학자 유홍준 자택인 ‘수졸당(守拙堂)’, 노무현 대통령 묘역 등을 설계한 건축가. 제주시 도심의 보오메꾸뜨르 호텔을 2007년,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에 세워진 제주추사관을 2010년 디자인한 건축가. 제주추사관은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초가의 이미지를 갖고 설계한 것으로, 한눈에 봐도 그것과 너무 닮았다.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을 짊어지고 다녔다. 그것은 가난한 이가 아니라 가난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건축 방법론이다.

젊은 시절, 서울 금호동 달동네를 지나는데, 어릴 때 살던 모습과 너무나 비슷했다.

그 공간 구조에 무궁무진한 건축의 지혜가 담겨있음을 느꼈다. 남루하고 초라하지만, 가진 게 적은 그곳 사람들은 많은 부분을 나누면서 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달동네에 감동하면서, 그것을 짊어지자고 다짐했고 1992년에 그가 속한 4·3그룹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시회를 할 때, ‘빈자의 미학’이라는 말을 내걸었다.

부산의 난민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만화책부터 모든 활자 매체를 좋아했다. 책을 달고 살았으며, 대학 건축과에 진학하였다.

그에게 피난민촌은 귀소본능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여덟 가구가 모여 사는 삶의 풍경을 늘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모여 사는 모습이 공동체로서 좋은 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수근을 만났고, 이후에 김수근의 유언을 받아들여서 ‘공간’대표를 했으니까 15년을 김수근 문하에 있었던 셈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면서 아돌프 로스라는 건축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건축으로 시대를 혁명한 사람이다. 그때 아돌프 로스가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하면서 새로운 건축물을 빈 시내에 세웠다. 모더니즘이 탄생하는 실마리가 되는 건축이었다.

그걸 보며 건축을 통해서 혁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건축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오히려 지식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국으로, 김수근 선생에게 돌아왔다.

승효상은 선함과 진실함, 아름다움을 매 순간 발견할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집에 살더라도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감격하고, 지는 해를 보며 아름다운 감수성에 젖을 수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배율을 맞춰서 창을 뚫을 수 있고, 빗방울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도록 처마를 낼 수 있다.

조그만 침실이라도 그 사람이 사유의 순간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빛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건축을 통해서 얼마든지 사람들의 지적 감수성을 유도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승효상이 추구하는 ‘빈자의 미학’이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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