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꼴을 넘어
닮은 꼴을 넘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8.14 1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준호. 호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국내 각 곳에서 도시와 지역의 고유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다양하다. 여러 수식어를 통해 만들고 싶은 브랜드를 제시한다. 하지만 수식어가 붙는 브랜드가 진정한 브랜드일까? 파리·뉴욕·하와이를 떠올릴 때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할까? 가치 있는 온전한 도시와 지역의 브랜드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그만큼 차별화되고 뚜렷하다. ‘하와이 같은 제주’가 아닌 그저 ‘제주’가 이렇게 진정한 브랜드가 돼야 한다. 저명한 경영학자 챈들러(Chandler)는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고 했다. 개성 있고 강한 브랜드 ‘제주’ 만들기 전략을 위해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하는 ‘지자체 제주’는 어떨까?

늘 첫 수업에서 학생들의 자기소개를 요청한다. 개성 넘치는 자기소개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학생은 앞서 자신을 소개한 다른 학생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한다. 따라서 그 시작점은 맨 처음 자기소개를 한 학생이 되곤 한다. 앞의 학생을 따라 그 후의 학생들은 마치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연스레 동일한 소개방식을 따라한다. 대부분 그렇다. 학생들의 자기소개는 결국 닮은 꼴이 된다.

세계적인 제도주의 학자인 디마지오와 포웰(DiMaggio와 Powell)은 조직이 서로 닮아가는 현상을 ‘동형화(isomorphism)’라고 설명했다. 동형화는 불확실한 환경 하에서 생존을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타난다. 환경이 수용하는 방식을 받아들여 다르지 않게, 튀지 않게 가는 것이 요체다. 하나의 틀이 도미노처럼 제도화돼 간다. 세 가지 기제가 있다. 규범적 동형화, 강압적 동형화, 모방적 동형화가 그것이다. 규범적 동형화는 교육기관이나 전문가의 의견이나 자문을 통해 조직이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강압적 동형화는 힘의 우위를 지닌 조직의 영향을 받아 그들 혹은 그들의 요구를 닮아가는 것으로 협력업체가 거래하는 대기업을 닮아가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모방적 동형화는 불확실성 속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할 부담과 필요를 느낄 때 좀 더 앞서가는 누군가를 따라 함으로써 닮아가는 것이다. 다른 조직의 성공적 관행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세 가지 기제는 지자체 간 구조와 운영의 동형화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론이나 국내·외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 집단의 방향 제시(규범적 동형화), 자원 배분의 서열을 결정하는 정부의 경영평가(강압적 동형화), 잘하는 다른 곳이 어떻게 하는지를 조사·참조하고 그와 유사하면 합리성을 얻는 의사결정구조(모방적 동형화) 등 이렇게 지자체의 구조와 운영은 서로 꽤나 닮게 된다. 조직·인력·의사결정·예산·규정 등의 구조와 운영 전반에서 흡사해지고 도시와 지역 명을 떼고 들여다 보면 해당 내용이 어느 지자체의 것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이것이 무조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일정 수준의 질을 확보·유지하며 검증된 방식을 통해 안정성을 추구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차별화되고 뚜렷한 도시와 지역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결정, 실행하는 구조와 운영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뭐라고 하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는 식의 접근이 지자체만의 개성 있는 구조와 운영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 정도가 아니라 목적이자 내용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제주’의 정체성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내적인 고민과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 남과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는 ‘특별자치도’다. 제주는 공인받은 지자체로서의 특별함 외에도 다른 지역·도시와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다른 지역과 다른 전략을 지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전략에 적합한 구조와 운영 역시 제주특별자치도만의 남다름이 필요하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정책, 조직, 운영 등에 있어 외부 기준의 비교와 참조도 필요하겠지만 스스로를 기준 삼는 내부 관점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내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해서는 보기에 그럴듯한 ‘옷’에 집중하기 전에 ‘나의 체형’을 이해해야 한다. 창조와 혁신은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성찰에서 비롯된다. 닮은 꼴 전략, 닮은 꼴 구조와 운영을 ‘제주답게’ 바꿔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