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기를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기를
  • 제주일보
  • 승인 2016.01.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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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자. 세이레어린이극장 대표

그림 그리기를 참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쓱쓱 연필을 몇 번 놀리면 어느새 새가 날아가고, 사자가 포효하고, 친구들의 초상화가 나오고 선생님들의 칭찬도 쏟아졌었다. 화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따로 그림 배우러 다니지는 못했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학원은 부자 부모님을 둔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기도 했었으니까.

그 친구는 그림만 잘 그리던 친구가 아니었다. 언제나 책을 끼고 살던 그 친구는 글도 참 잘 써서 문학잡지에도 실린 문학소녀이기도 했다. 그런데 화가나, 아니면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그 친구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슈퍼우먼이 되어 있었다. 30년 만에 만난 그 고교동창친구, 재능이 아까워 지금이라도 그림 좀 그리지 그러냐하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 키우다보니 겨를이 없더라면서 일찌감치 그림을 때려치웠다고 한다.

그런데 궁금했다. 하고 싶은 일을 접은 후, 친구는 정말로 행복했을까? 아이들은 엄마의 바람대로 잘 자란 것 같았다. 그녀의 그림 솜씨가 아까웠지만 어쩌면 지금의 현실을 볼 때, 예술만 하면서 살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을 볼 때,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 행복을 찾은 그녀가 더 현명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얼마 전, 공연을 준비하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연극하면서 살고 싶다는 어느 남고생 아들을 둔 선생님이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연극하고는 싶은데 대학은 준비를 안 해서 지금 당장은 갈 수도 없다며 그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연극하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무슨 말을 들으러 오시는 걸까? 아이를 단념시켜달라는 걸까? 순간 갑자기 엄청난 부담감이 몰려왔다. 아이의 마음은 어쩐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연극은 힘든 일이니, 더군다나 돈도 못 버는 가난한 직업이니 마음을 바꾸라고 얘길 해줘야하나, 예술은 그래도 할 만하고 도전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부추겨 줘야하나.

한참 망설이다가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다행히 부모님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분이었다. 아이도 나를 보는 눈빛이 달랐다. 새로웠다. 부모님을 설득시켜달라는 것인지, 많은 것을 알려달라는 것인지, 궁금한 게 많을 테니 달랐을 것이다. 연극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나는 단지 성공한 사람이었을 테지만, 아이 눈에도 돈도 안 되는 연극에 올인하는 사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니 뭔가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무 평범한 이야기만 들려주었다.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뭘까? 내 자식이 무슨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걸까? 내가 어렸을 때,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소위 엘리트들의 진로는 남녀를 불문하고 대동소이했다. 판사·변호사 등의 법조인이 1순위, 의사가 2순위, 박사로 통칭됐던 교수가 3순위, 3순위까지가 우리 세대에선 세 가지(아파트, 차, 사무실이나 병원) 키(key)를 쥘 수 있는 3사(士)였다. 요즘은 좀 바뀌어 선호하는 직장의 우선순위가 공무원·의사·교사 순이라지만,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돈, 그 옛날부터 현재까지 진로 선택 목표 중 중요한 하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최근에는 안정을 더 선호한다지만 이 역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기본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평생 돈 벌이 수단이 되면서 살다가는 금세 지치지 않을까?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을까? 누구의 뒷바라지나 하다가 사라질 운명처럼 느끼지 않을까?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해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살아가야할 텐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직업 선택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진로 선택함에 있어서 남들이 원하는 일보다 되도록 니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조언해줬다. 가다가 분명 실패할 수도 있다, 그걸 두려워 안 가겠느냐, 해보고 나서 아니다 라고 다시 판단할 시간도 있을 것이다. 도전해봐라.

 

삶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바보 같은 머리를 가졌다고 둔한 내 머리 탓만 한다. 이렇게 우린 머리로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삶의 가장 원초적인 동력은 가슴에서 나온다. 가슴이 뛰는 삶을 살 때 우리의 머리는 천재와 같은 능력을 보이기도 하니까. 가슴이 뛸 때 그만큼 많은 것을 얻게 되니까, 한 번 뿐인 인생 아닌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아직 안 늦었다고, 우리 더 나이 들어서 갈 데 없고 할 일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잘 할 수 있었던 일, 하고 싶었던 일 찾아서 하면서 즐겁게 노후를 즐겨보자고.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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