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세다리
간세다리
  • 제주일보
  • 승인 2017.07.2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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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제주일보]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볕살이 주야를 가리지 않는다. 열대야에서 살아남아 고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길이 녹록지가 않다.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이면서도 사회의 빠른 변화에 대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모바일의 기능, 젊은이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보면서 흐름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할 일이 없이 방관만하는 내가 간세다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제주어에 ‘간세다리’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게으름뱅이를 일컫는 제주 사투리라고 쓰여 있다.

“그렇게 간세를 부리다가는 비렁뱅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공부를 하지 않고 방 안에 드러누운 나를 보고 항상 그렇게 말을 했다. 할 일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만 지내는 사람들에게 빗대는 말로 좋은 의미는 아니다.

필자의 생각이다. ‘간세’는 제주조랑말이다. 조랑말은 작디작은 말을 뜻한다. ‘작다’는 말은 제주에서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고는 고는 호다’(ᄀᆞ는ᄀᆞ는 ᄒᆞ다)아주 ‘가늘고 작다’는 말이다.

제주어로 ‘간세’는 ‘가는 쇠’에서 유래된 말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쇠’는 표준어로 ‘소’다. 제주의 조랑말이라는 ‘간세’는 몸체에 비해 다리가 아주 작고 가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추측해 볼 수가 있다.

그러면 왜 말을 소라고 불렀을까. 제주지역에서 조랑말은 소와 같이 밭갈이와 운송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가축의 이름보다는 역할적인 면에서 불렀을 것이다.

소 보다는 힘이 약하고 말 보다는 느린 ‘간세’의 역할은 분명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소가 없던 서민들에게는 농사일에 없으면 안 되는 가축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중 육지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제주지역에서의 농사일이 분업화 되었을 것이다.

밭갈이는 힘이 센 소(牛)가, 운송수단은 힘과 주력을 고루 갖춘 말(馬)이 담당하면서 조랑말인 간세는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시대의 변화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간세는 농사꾼들에게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가축이라 여물을 준비해야 하고 소나 말과 같이 관리를 해야 한다. 아무 쓸모가 없지만 버리지는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쳐다볼 때마다 그 짧은 다리가 얼마나 밉상이었을까. 그것이 일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애고! 저 간세다리”라는 욕으로 변질되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육체적인 결함을 가지고 욕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제주 조랑말인 간세는 폐기처분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제주인들과 오랫동안 힘든 삶을 함께 해 온 가축이며 살아있는 제주의 혼이다.

지금도 제주어 노래에는 ‘요망진 간세다리’라는 가사 내용들이 있다.

제주에서 요망지다는 말은 귀엽고 똑똑하고, 앙큼스럽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간세다리의 속도로 조정하면 어떨까. 빨리 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과속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뚜벅뚜벅 걷다가 종종걸음으로 바꾸기도 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누릴 때도 됐지 않는가.

이제는 살 만하다고 소나 말들을 도축장으로 끌고 가기 전에 그들이 과거에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는 가를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한다.

자연 속에서 창조된 것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사물들은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 여유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사면도로를 천천히 달리는 티코의 모습에서 어린아이의 앙증스러운 모습을, 해수면 아래를 유유하게 헤엄치는 거북이의 한가함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찾아볼 수 있지 않는가.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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