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그리고 땅
제주, 그리고 땅
  • 제주일보
  • 승인 2016.01.0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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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前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한 하늘이 열렸다. 한 땅이 들어섰다. 그 하늘과 땅이 만났다. 다시 하늘과 땅이 갈라섰다. 온갖 신이 나타났다. 신들은 하늘과 땅을 오가며 세상을 만들었다. 아득하고 아득한 그 태초에, 제주도는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었다. 어느날 옥황상제의 딸인 거신(巨神) 설문대 할망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하늘과 땅을 분리해 버렸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노발대발하면서 설문대 할망을 불러 호되게 꾸짖었다. 옥황상제는 그에 대한 벌로 설문대 할망을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이때 설문대 할망은 엉겹결에 치마에 약간의 흙을 묻히고 왔는데 바로 이 흙이 제주도가 됐다.

이런 신화의 땅이 요즘 무척이나 몸살을 앓고 있다. 왜, 어째서? 치솟는 땅값 때문이다. 엊그제 일이다. 서울에서 오랜만에 제주도 출신 고교동창들이 모였다. 앉자마자 화제는 곧바로 ‘제주도 땅’이었다. 누구네 동네는 땅값이 얼마 오르고 누구네 동네 땅은 계속 오르고 있으니 팔면 안된다는 식이다. 두 달 전에 어떤 사람에게 작은 규모의 땅 1억원을 주고 팔았더니 한 달만에 1억원을 더 챙기고 팔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땅 얘기는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그칠 줄 몰랐다. ‘고작 땅 얘기하려고 만난 것은 아닌데’ 하는 씁쓸한 마음마저 생겨났다. 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켰다. 그러면서 절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다들 미쳤다’였다. ‘사람이 아니라 땅이 미쳤나?’, ‘설문대 할망이 요즘 미쳤나 보지 뭐’…. 술 잔이 거듭될수록 머리 속이 웽웽 거렸다. 무슨 까닭이라도 있나?

최근 제주 이주민이 늘고 중국인 투자자들에 의한 대규모 개발사업이 활발해진 데다 지난해 말 제2공항 예정지까지 확정되면서 땅값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답은 문제에 있다. 이주민 증가와 각종 개발 영향 등으로 제주지역 부동산값이 크게 뛴 것은 2014년부터였다. 저가항공의 활성화, 그리고 이주민의 급증과 중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개발사업 등이 부동산값 폭등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신규 택지개발사업이 이뤄지지 않아 주택 공급이 어려워진 이유도 있다.

지난해 말 제주도의 주민등록상 인구는 62만1550명으로 전년에 비해 2.8% 증가했다.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1만4550명이 제주에 새로 이주해왔다는 것이다. 전국 평균 내국인 증가율은 0.4%이지만 제주도는 2.3%나 될 정도로 제주 이주민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 달 평균 1500명이라는 통계가 있지만 실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주민의 증가는 부동산시장에 반드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필지수 기준으로 지난해 5만9367건이 거래돼 전년도에 비해 무려 31.6%나 급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가상승 현황을 보여주는 지가지수 상승률도 2014년에는 161.79%로 전국의 73%보다 갑절 이상 높았고, 제2공항 발표 직전인 지난해 11월 지가상승률은 전달의 0.501%보다 1.972%로 폭등했다. 그리고 제2공항 발표 이후 요즘에는 자고 나면 땅값이 오른다는 식의 얘기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땅값은 고공행진하는 추세다.

진정 생각해 보자. 땅값 오른다는 것이 과연 제주도민들한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일까. 제주도는 부동산대책본부를 결성하는 등 부동산값 잡기에 나서고 있지만 제주도 전역의 부동산과 관련한 쪼개 팔기, 분양권 전매, 다운계약서 작성 등 피해가 계속 발생되고 있다. 사실 제주도 부동산값의 폭등은 2~3년 전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제주도는 그에 대비해 충분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제주도가 어떤 땅인가. 1만8000여 신들이 사는 신성한 땅이고 세계적인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사람이 미치지 땅이 미치겠는가.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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