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과거와 법의 정의를 세우는 일
부끄러운 과거와 법의 정의를 세우는 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19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 제주지방법원은 간첩으로 몰려 5년 4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광보씨(76)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했다. 그 무섭던 간첩죄가 이같이 뒤집혔다. 이 판결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 간첩으로 몬 사실을 제주지방법원이 또 다시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강씨는 이번 재심에서 재판부에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또 “당시(1986년) 보안대가 거짓으로 조서를 작성해 서명하라고 강요했고 이를 거절하니 고문을 당하고 5일동안 잠도 안재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런 강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인(강씨)이 보안부대에서 조사 받을 당시 장기간 불법구금 상태에서 가혹행위 등에 의해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강씨가 보안대에서 검찰로 넘겨져서도 임의성 없는 진술을 이어나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이런 판단으로 이 사건 공소 사실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백발이 성성한 70대 후반의 노인이 된 강씨가 31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간첩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고 옥살이까지 한 그의 청춘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동안 간첩이 된 강씨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이 간첩 가족이라는 족쇄 속에 어떻게 살았는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강씨가 당한 고문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가장 파괴적이고 잔인한 행위다. 비록 강씨가 이번 판결로 누명을 벗었다고는 하나 사악한 권력에 짓밟혀 희생된 지난날을 결코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해 11월에도 간첩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 했던 강모씨(46)와 김모씨(24) 모녀가 재심 항소심 끝에 32년 만에 누명을 벗었고, 그 이전 강희철씨의 간첩죄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제주지방법원이 이런 간첩죄 사건에 내린 무죄 선고 취지는 세 사건이 모두 거의 비슷하다. 불법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피의자 신문조서, 진술서 등이 작성됐음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들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를 말하고 있다. 이 세 사건만이 아니다. 세월에 묻혀 잊혀진 사건들도 하나 둘이 아니다. 강씨가 이번에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부끄러운 사법의 역사까지 다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법의 정의가 다시 서기 위해서는 검찰과 법원이 그리고 국가 권력기관들이 한 개인의 인생을 짓밟은 지난날의 사법 살인행위에 대해 고백을 하는 용감한 자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강씨와 같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 당하는 억울한 국민이 나오지 않고,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대한 신뢰를 보낼 수 있다. 법의 정의를 세우는 일은 강씨의 무죄로 끝나서는 안 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