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지만 평범한 일상…왜 눈물짓게 되나"
"덜컹거리지만 평범한 일상…왜 눈물짓게 되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7.0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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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나는 지하철입니다

[제주일보] 사서 교육원을 다니던 시절 1년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교육원에서 소개해준 도서관에서 일하며 몇 개월 간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는 혜화, 도서관은 왕십리에 있었기에 매일 지하철 4호선과 2호선을 갈아타며 다른 직장인들처럼 서울 생활에 녹아들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사람들에 치이며 지하철에 오르고, 퇴근 시간에는 학교 수업 놓칠 새라 지하철 환승 방향으로 뛰어 다니던 게 처음엔 재미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체력적으로 무리였는지 얼마 못가 탈이나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됐다. 얼마 후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는 서울 생활은 까마득히 잊은 채 또 다시 제주도 생활에 익숙해졌다.

가끔 1년에 한두 번 출장으로, 여행으로 서울에 가면 타게 되는 지하철은 직장 생활과 시험 준비를 병행하던 그 당시 취업준비생의 절박함이 아닌 단순한 교통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한 달 전 7살 아들과 함께 서울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 여행 동안은 지하철만 타고 다니겠구나’라는 생각에 아들에게 ‘나는 지하철입니다’를 읽어줬다. 지하철을 본 적도, 타본 적도 없는 아들은 지하철이 얼마나 빠른지에 대해서만 궁금해 하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드디어 여행 날,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는 무척 신기해하며 졸려도 두 눈 부릅뜨며 안자겠다고 억지 부리던 아들은 2박 3일간 9호선, 2호선, 3호선을 번갈아 타면서 환승할 때마다 뛰고 걷는 게 많이 지쳤는지, 여행이 끝날 무렵 “엄마, 지하철 재미없다. 다음부터는 안 타젠” 한 마디 하더니 공항 가는 길에 결국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아들에게 이 책을 읽어줬다. 아들은 신이 나서 지하철을 탔을 때 봤던 사람들에 대해, 한강 다리를 건너기 위해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던 때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빈자리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앉으라고 말을 걸던 할머니,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상기된 채 야구 얘기를 하고 있는 남녀.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앉아 있던 사람들. 각자의 스토리를 간직한 채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내릴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하자 책을 함께 보는 내내 뭉클해졌고, 지난해 JTBC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이 책을 소개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길을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은 덜컹 덜컹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덜컹 덜컹 흔들리지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할머니의 못다 판 이야깃거리와 7살 아들 생일에 사 가는 고소한 치킨 냄새. 시큰하게 땀이 밴 셔츠, 낡은 구두와 그 모든 것을 어루만지는 오후의 햇빛. 삶이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닌데…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그 풍경 같은 일상에 우리는 왜 감동하고 눈물짓게 되는 것인가….”

새삼 도서관 후배가 김효은 작가가 제주도에 강연을 온다고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몸살감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이 책 한 권을 만들어내기까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스케치하며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3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 열정과 세심함에 감탄했다. 그림책 작가들은 책 한 권에 보통 3~4개 정도의 더미북, 일명 연습용 그림책을 만드는데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10개 이상의 더미북을 만들었다고 한다.

내용 또한 처음에는 지하철을 탄 한 아이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내용에서 개개인의 삶을 지하철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작가의 고운 심성이 묻어났다.

책을 덮으며,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서 만날 가족과 친구들 안에서 충분히 행복하고 따뜻한 일상을 느끼길 나 또한 바라본다.

<진승미 제주도서관 사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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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가족 2017-08-08 15:10:22
나는 지하철입니다라는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고운 글 고맙습니다.